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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영란법’ 앞서 청와대 식단부터 바꿔야

논설 위원I 2016.08.17 06:00:00
지난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의 호화 오찬 논란은 진위 여부를 차치하고 국민들에게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 자리에서 마침 서민들의 전기요금 누진세 인하 문제가 논의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기료 폭탄이 겁나서 살인적 폭염에도 에어컨을 마음대로 못 켜는 서민들로서는 청와대의 호화 오찬 메뉴에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꼈을 게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대표로 선출되자 이틀 뒤 새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당선을 축하하면서 물냉면과 능성어찜을 대접했다. 호남 출신인 이 대표에 대한 배려였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바닷가재, 훈제연어, 송로버섯, 캐비어 샐러드, 샥스핀찜, 한우갈비 등이 줄줄이 오른 초호화 식탁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 11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특히 ‘식탁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송로버섯은 크기와 품질에 따라 값이 수백만원에서 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요즘 같은 혹서기에는 왕조 시절의 임금님도 반찬 가짓수를 줄여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했다는 옛 사례도 모르느냐는 힐난이 쏟아질 만도 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송로버섯과 캐비어는 그만두시고 전기료 누진제라도 조정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대놓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청와대는 송로버섯을 주재료가 아닌 향신료로 조금 썼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유명 요리사들도 이에 동의하며 1인당 식사에 포함된 송로버섯 비용이 기껏 몇천원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송로버섯을 제외한 나머지 식단만으로도 핀잔을 듣기에 충분하다.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렇게 산해진미를 즐기며 전기료를 몇천원씩 깎아준다고 생색을 냈으니 서민들의 화가 치솟는 것도 당연하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그날의 식사비용이 김영란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1인당 식사접대비 상한선 3만원은 훌쩍 뛰어넘었을 게 틀림없다. 청와대나 국회의원들이나 당연히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시행까지는 아직 한달 넘게 남았지만 청와대부터 솔선하지 않고 국민에게만 법 준수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값비싼 수입 식재료가 다수 포함된 것도 거슬린다. 청와대는 차제에 식단을 바꾸는 방안을 심각히 고려해야 마땅하다.

헌재, 김영란법 합헌 판결

- 추석선물 예약판매 '시들'···더위 탓? 김영란법 탓? - 정부, 김영란법 시행령안 이견 조율에 실패 - 이석준 국조실장 “김영란법 비대상자 위축되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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