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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없는데.." 민간임대사업 포기

양희동 기자I 2014.08.18 07:00:00

임대수요 넘쳐도 규제·편견으로 제자리
세제 혜택·임대료 자율권 줘야

△정부가 임대주택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과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민간 부문의 공급이 늘지 않으면서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국 처음으로 토지임대부 민간 임대주택 건설을 추진 중인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사 일대. [이데일리DB]
[이데일리 양희동 임현영 기자]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들어선 왕십리역은 지하철 2·5호선과 분당·중앙선 등 4개 노선이 만나는 국내 첫 쿼드러플 환승역이다. 특히 2012년 10월 분당선 왕십리~선릉역 구간 개통 이후 강남구 압구정동(압구정 로데오역)이 두 정거장 거리로 연결되면서 강북에서 강남과 가장 가까운 시발역이 됐다. 현재 왕십리역은 매일 아침 강남으로 출근하려는 직장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 14일 오전 7시30분 왕십리역. 이 역은 경기도 수원까지 연결되는 분당선의 첫 출발역인데 앉을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인근 행당동과 상왕십리동은 물론 2·5호선, 중앙선 등을 타고 강남으로 가려는 환승객들까지 몰려들기 때문이다.

◇수요와 사업 의지 있어도 제도와 편견이 걸림돌

강남권 출·퇴근 승객이 급증하면서 왕십리역 인근의 주택 임차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행당동 조은공인 관계자는 “왕십리역 인근은 원래 한양대 등 대학생 수요가 많은 곳이었지만 2년 전 분당선 개통 이후 방을 구하는 강남권 직장인이 크게 늘었다”며 “지금은 원룸이나 오피스텔 임차 수요 절반가량이 직장인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왕십리역 일대 임차 수요 급증은 땅을 매입하는 게 아니라 빌려서 집을 짓는 ‘토지임대부’ 방식의 전국 최초 민자형 행복주택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체인 신영은 코레일이 보유한 왕십리역 철도 유휴부지(5693㎡)를 빌려 지하 2층, 지상 21~22층, 총 299가구(전용면적 60㎡ 이하) 규모의 민간 임대주택 건설 사업계획안을 지난달 서울시에 제출했다.

신영은 지상권(토지 사용 권리)을 갖고 택지비의 3% 안팎을 토지 임대료로 내게 된다. 사업지는 수화물 하적장으로 쓰던 철도부지여서 정부가 추진 중인 행복주택처럼 인공 데크(덮개) 등을 건설할 필요가 없다. 코레일로서도 땅만 빌려주면 돼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고, 민간은 전체 사업비의 35~40%가량인 토지비 부담 없이 임대주택을 지어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사업 진척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서울시는 민간 건설 임대주택이 실제 공급된 사례가 없어 입주 대상 및 임대료 책정에 신중한 모습이고, 성동구는 구청 앞에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법률상 민간 임대주택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입주 대상과 임대료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며 “민간이 사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임대주택의 시공에서부터 임차인 모집과 운영, 사후 관리까지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법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3~4월 주택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64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익성 유지의 어려움’(40.3%)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사업 비용 및 까다로운 절차’(25.8%)와 ‘제도적 기반 부족’(24.2%)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임대사업자 64개업체 대상으로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3~4월 민간 임택주택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조사한 결과. [단위:%]
◇독일·일본·호주 등 선진국 ‘수익·공익성’ 동시 확보

주택 임대차시장이 활성화된 독일·호주·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민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임대주택 공급에 참여하고 있다. 임대주택 거주가 보편화된 독일에서는 정부지원형 또는 준공공 형태인 ‘사회주택’(민간 임대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사회주택은 건설 및 소유·관리를 모두 민간이 담당하고 공공은 건설 비용과 임대료를 보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공공은 임대주택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민간에 10~15년간 싼 이자로 융자해주는 등 세제 혜택을 준다. 대신 민간이 재정지원과 세제 혜택을 받는 기간에는 공공이 임대주택의 거주 환경과 입주 자격, 임대료 등을 규제한다.

일본의 경우엔 우리의 토지임대부 방식과 같은 ‘정기 차지권’을 활용해 민간 건설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민간사업자는 지자체 등으로부터 토지 임대료를 내고 공유지를 빌려 임대주택을 지은 후 세입자에게 임차해 수익을 얻는다. 공공은 관리 주체로서 일부 민간에 위임하지 않는 업무만 수행하고, 건물 운영 등 관리는 전적으로 민간이 맡는 형태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도 2000년대 이전까지는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임차인 중심 임대주택 정책을 폈다”며 “하지만 임대주택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임대사업자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법안을 도입한 이후 임대주택 공급이 오히려 확대됐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는 민간이 임대주택 사업을 신청하면 입주자 관리 업무까지 포함해 입찰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 사업자에게 향후 운영 책임을 부여해 공공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민간 사업자의 임대주택 운영 관리를 철저히 점검하면서도 관련 부대사업은 적극 허용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엄근용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민간 임대주택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임대사업자의 수익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가 제도 개선을 통해 민간에 세제 혜택과 수익성을 보장한다면 건설업계도 사업 다각화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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