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능청 속 녹아든 풍자, 난쟁이들 얕보지마라

김미경 기자I 2022.03.03 06:02:00

-심사위원 리뷰
여전히 흥미로운 2022년의 뮤지컬 ‘난쟁이들’
제작 랑·김동연 연출, 인물 성장서사 눈길
패러디·말장난 한데 붙은 난쟁이들 문법
공연 시그니처 단연 넘버 '끼리끼리' 장면
거친 언어 순화 예민한 점은 반감 아쉬워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뮤지컬 ‘난쟁이들’(이지현 대본|황미나 작곡|김동연 연출|㈜랑 제작·마케팅)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공연은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능청스러움에서 출발하지만 날카로운 현실 풍자를 놓치지 않으며, 허황된 판타지를 다루는 척하면서도 인물의 성장서사를 보여준다. 패러디와 아이러니, 말장난과 진지한 멜로가 한데 붙어 있는 ‘난쟁이들’의 문법은, 이 모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매력을 드러낸다.

‘난쟁이들’의 미덕은 동화 속 ‘난쟁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을 비틀어버린 극적 상상력에 있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의 ‘그 이후’가 현실적인 관점으로 다뤄짐으로써 영원히 착하고 아름답고 고상할 것 같았던 공주들은 모두 결핍 덩어리로 묘사된다.

뮤지컬 ‘난쟁이들’의 한 장면(사진=랑).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는 결혼 이후 남성의 재력과 성적 능력이 행복의 척도임을 깨닫고 모두 이혼했으며, 인어공주는 물거품으로 변한 이후 마법으로 겨우 살아났지만 여전히 이타적 성격을 버리지 못한다. 공주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 난쟁이 찰리와 빅은, 마법과 불법의 힘으로 공주들이 모이는 무도회에 가게 됨으로써 ‘그 이후’를 살고 있는 공주들과 얽히고 설키게 된다. ‘지금의 나’를 인정함으로써 보이는 ‘현재의 행복’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판타지보다 진실된 것임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다양한 스타일의 넘버에 얹어 풍자와 아이러니로 드러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공연의 시그니처는 단연코 넘버 ‘끼리끼리’ 장면이다. 왕자가 아닌 것이 들통나 감옥에 갇힌 찰리와 빅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이웃나라 왕자들의 난데없는 설교, 절박한 난쟁이들을 태운 느려터진 말과 왕자들의 퍼포먼스, 넘버의 멜로디 라인과 ‘말’로 수행되는 가사의 리드미컬한 조합, 그리고 간단히 움직이는 감옥틀은 ‘난쟁이들’의 미학적 지향점을 보여준다. 진지함을 비웃는 가벼운 농담과 간단히 뒤집히는 극적 설정들은 비틀기, 낯설게 하기에서 비롯되는 한계 없는 웃음이 ‘난쟁이들’의 가장 큰 재미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주제를 밀고 나가는 후반부 멜로들은 다소 지루하며,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관계를 푸느라 빠르게 터치되는 극적 설정들 역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2015년 초연에서 2018년 삼연까지 이어졌던 지난 시즌 배우들의 아우라는 너무 강렬해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 장르적 매력을 반감시킬 정도로 거친 언어들을 순화하는 데 너무 예민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극의 논리가 보강되고 현실 풍자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 2022년 ‘난쟁이들’은 초연 이후에도 여전히 흥미롭고 쾌활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길고 긴 코로나 시대에 웃고 즐길 수 있는 뮤지컬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오는 4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플러스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