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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반도체장비]②공동 R&D·지분 투자…대중소 협력해야

강경래 기자I 2021.03.23 05:00:30

'슈퍼사이클' 맞아 반도체 대기업 천문학적 투자 단행
삼성 36조·대만 TSMC 30조·SK하이닉스 10조 등 예상
하지만 반도체 장비 상위 10위 안에 한국 업체 없어
"대기업 국산 장비 과감히 채용, 정부 지원도 더 늘려야"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호황)을 맞으면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대만 TSMC(타이완 반도체 매뉴팩처링) 등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 사이에서 공장을 풀가동하고 증설에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전방산업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분야가 바로 반도체 장비 업종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반도체 장비산업의 갈 길은 멀다는 게 중론이다. 대당 3000억원을 호가하는 노광장비(리소그래피)를 비롯해 식각장비(에처), 측정장비 등 핵심장비들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에서 전량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를 단행하더라도 대부분 수혜는 해외 장비업체들에 돌아가는 셈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올해 반도체 장비시장 719억달러 ‘사상 최대’

22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장비시장은 719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689억달러와 비교해 4.5%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의 투자가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장비업체들이 혁신적으로 성장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실제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아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대만 TSMC 등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이 올해 천문학적 투자에 나섰다. 우선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함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반도체 부문에 36조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 공장과 중국 우시 공장(C2F) 증설 등에 1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 역시 올해 역대 최대인 3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외 반도체 대기업들이 투자에 나서면서 후방산업에 속한 장비업체들 사이에서도 수혜 기대감이 높아진다. 통상 반도체 투자는 공장 건설과 함께 장비를 도입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산화가 활발히 이뤄진 반도체 증착장비 업체들을 중심으로 최근 수주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원익IPS(240810)는 삼성전자 중국 시안 2공장에 들어갈 장비를 총 1160억원에 수주했다. 원익IPS는 반도체 웨이퍼(원판) 위에 필요한 막을 균일하게 입히는 플라즈마 화학증착장비(PE CVD) 등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장비를 생산하는 테스(TES) 역시 삼성전자와 중국 시안 2공장에 쓰일 장비를 1090억원에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또한 주성엔지니어링(036930)은 SK하이닉스와 130억원 규모로 원자층증착장비(ALD) 등을 공급하기로 최근 계약을 체결했다. 저압 화학증착장비(LP CVD) 등을 제조하는 유진테크(084370)는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에 들어갈 장비를 114억원에 수주했다. 증착장비 외에도 한미반도체(042700)(절단·검사장비)와 신성이엔지(011930)(클린룸), AP시스템(열처리장비), 케이씨텍(세정장비), 유니테스트(번인장비), 엘오티베큠(진공펌프) 등 업체들의 수혜가 점쳐진다.

장비 10위 안에 한국 기업 전무, 결국 과실은 해외로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 사이에서 공급계약이 이어지지만, 정작 대부분 과실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해외 업체들에 돌아갈 전망이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장비업체 상위 10개 중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16위)와 함께 원익IPS(18위) 등 2곳이 20위 안에 겨우 이름을 올려놓았을 뿐이다. 빛을 이용해 반도체 원판(웨이퍼) 위에 회로를 구현하는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과 함께 일본 니콘, 캐논 등이 과점하고 있다. 또 반도체 원판 위를 정밀하게 깎아내 회로를 만드는 식각장비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의 시장 점유율이 ‘넘사벽’이라는 평가다. 주검사장비 역시 일본 어드반테스트와 함께 미국 테라다인 등이 과점하고 있고 이온주입장비는 미국 베리안(어플라이드에 합병), 측정장비는 미국 KLA텐코, 감광액 도포장비는 도쿄일렉트론이 각각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메스에서 선임연구원을 지낸 안영기 대림대 스마트팩토리학부 교수는 “ASML을 비롯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도쿄일렉트론 등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관계에 있어 오히려 ‘갑’으로 군림한다”며 “한국 장비업체들과는 매출액과 R&D 투자액 등에서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이 최소한 내년까지 이어질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란 기회를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도체 대기업이 국내 장비업체들과 지분 투자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한편, 정부 역시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도체 장비업체 에스엔유(080000)프리시젼을 창업한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한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해외 경쟁사들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하니 반도체 대기업들은 외산을 선호하고, 이는 곧 한국 반도체 장비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반도체 대기업들이 같은 장비라면 국산을 채용하는 비율을 높이는 한편, 장비업체들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과 관련한 공동 R&D(연구·개발)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장비업체 지분 투자 등을 통해 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역시 반도체 장비업체들에개 ‘쪼개기’ 방식으로 R&D 자금을 지원할 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해외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업체를 엄선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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