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좋은 뇌 나쁜 뇌 이상한 뇌…1.4kg에 다 들었다

오현주 기자I 2018.05.30 00:12:00

신경과학자 겸 코미디언의 유쾌한 뇌 탐구
한 인간 역사 담긴 1.4kg짜리 슈퍼컴퓨터
분노·사랑·식욕 등…감정·행동 컨트롤타워
의도치 않은 실수·잘못 "내 탓 아닌 뇌 탓"
………
뇌 이야기
딘 버넷|464쪽|미래의창

낮에는 신경과학자, 밤에는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투잡을 뛴다는 저자 딘 버넷이 이력만큼이나 독특하게 뇌를 탐구했다. 인간과 뇌를 한 몸 속 두 개체로 떨어뜨려놓고 분석한 거다. 분노·사랑 등 감정, 허세·착각 등 성격, 식욕·수면 등 습관까지 인간을 구성한 모든 것이 죄다 뇌가 벌인 속임수라고 했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고민 1. “명함을 받았습니다. 다소곳이 쥐고 아무개씨를 여러 번 입에 올렸더랬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틀 뒤에 다시 만났는데 이름만 기억이 안 난다 이겁니다. 콧잔등에 작은 점, 입고 있던 슈트와 셔츠 색, 영화의 한 장면으로 나눈 시답지 않은 농담, 하다못해 명함의 빠닥빠닥한 질감까지 다 기억이 나는데요. ‘외우기 쉬운 이름이네요.’ 이런 헛소리나 하지 말걸. 내가 치매에 걸린 걸까요.”

# 고민 2. “둘이 앉아 삼겹살 5인분을 해치웠지요. 철판에 볶아주는 밥이 별미라고 해서 두 공기를 주문해 철판이 닳도록 긁어댔습니다. 된장찌개, 계란찜을 연신 떠올려가면서요. 그러곤 ‘배가 터질 거야’라고 하모니를 맞추며 식당을 나왔는데. 아이스크림가게가 보이는 겁니다. ‘아니 디저트 먹을 배가 남아 있어?’ 둘 중 하나가 이렇게 물었는데 ‘응 남아 있어!’란 외침은 동시에 터져 나왔지요. 우리 위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요.”

두 고민의 핵심은 이거다. ‘내가 잘못된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디가?’다. 고민은 장황하지만 미안하게도 대답은 간결하다. ‘뇌’다. 치매로 몰린 것도, 대식을 허용한 것도 모조리 뇌의 장난이란 말이다. 이뿐인가. 마음이 아픈 것도 뇌가 시킨 거고, 성질을 부리는 것도 뇌가 진두지휘한 거다. 그렇다면 슬슬 떠오르는 궁금증 하나. 뇌와 나는 별개의 존재인가,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으니.

책은 뇌 탐구서다.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뇌의 구조나 캤으려니 하는 판단은 섣부르다. 뇌가 친 그물에 늘 속으면서도 결국 뇌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는 인간, 그 둘의 기묘한 공생을 파헤치는 게 목적이니까. 뇌와 인간을 마치 두 개의 영혼이 든 생물체처럼 구분해낸 저자의 이력도 범상치 않다. 낮에는 신경과학자로 영국 카디프대에서 교수로 뛰고, 밤에는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클럽 무대에 서는 투잡맨이라니.

덕분에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과학과 유머라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든 건 ‘좋은 뇌, 나쁜 뇌, 이상한 뇌’였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지식과 위트를 총동원했다. 배가 곧 터질 거란 위의 신호를 무시하고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능력은 ‘좋은 뇌’의 긍정성 효과다. 하지만 ‘난 어제 별로 먹지 않았어’라며 거짓기억·건망증·기억상실 등 ‘망각의 삼총사’를 끌어내는 건 ‘나쁜 뇌’의 공작인 거다. 먹었든 안 먹었든 ‘내가 어쨌든 너보다는 똑똑해’라고 믿게 만드는 건 ‘이상한 뇌’가 벌인 착각일 거고.

그렇다고 뇌가 움직이는 동선이 안 나오는 건 아니다. 뇌는 “사회적이고 친화적인 성향이지만 정체성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려 부단히 애쓰며, 이를 깨뜨리는 대상은 즉각 응징한다”니까. 물론 가끔 엉뚱한 실수도 있다. 피라미를 잡아놓고 숭어를 잡았다고 우기는 것, 매력적인 이성이 한번 쳐다본 것을 대뜸 호감으로 바꿔버리는 일처리 등.

△성격이 이상해? 뇌가 이상해!

“인간의 경험과 뇌의 경험은 다르다.” 시작은 이거였다.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니 삐거덕거리게 마련이고, 어쨌든 일은 진행해야 하니 속이려는 뇌와 속지 않으려는 인간의 ‘공존프로젝트’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왜 굳이? 이렇게 보면 간단하다. 뇌는 이식할 수 없는 장기이기 때문. 인간의 모든 장기는 다른 사람의 것을 대신 달 수 있지만 뇌는 안 된다. 이제껏 성공한 사례도 없지만 연구 자체가 윤리논쟁을 부를 만큼 사안이 크다. ‘A의 뇌를 B에 이식했을 때 B는 A인가 B인가’란 질문에 답할 재간도 없다. 저자에 따르면 기억 때문이란다. 뇌에는 한 인간의 역사를 몽땅 담은 기억이란 게 있으니까. 그러니 뇌의 깊은 의중을 어찌 간파하겠느냐는 거다. 몇 가지만 보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비난은 날뛰게 한단다. 비난의 위력이 더 세다는 뜻인데. 뇌 안의 코르티솔 때문이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 말이다. 칭찬을 받을 때 나오는 옥시토신의 화학반응은 보통 5분이면 끝나지만 코르티솔은 1~2시간이 우습다고 했다.

분노 역시 뇌 탓이다. 물리적·정신적 위협을 감지하는 해마와 편도체가 화를 부추기는 거다. 통제수단 역시 뇌에 뒀다. 화가 났을 때 활발해지는 안와전두피질이 감정·행동을 통제한단다. 두고두고 곱씹는 것도 뇌다. 이건 내측 전전두엽피질의 역할. 그런데 흥미로운 건 화가 날 때 느끼는 본능적 감정이 화가 난 정도와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는 것. 몇 시간일 수도 몇 날, 몇 주일 수도 있고 결국 화병으로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랑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뇌 작용이다. “사랑은 그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초를 치던 냉소가 사실이란다. 사랑에 빠지면 보상회로의 도파민 활동이 증가하는데, 이는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낸단다. 콩깍지 이론도 맞다. 사랑에 빠지면 논리·이성적인 의사결정을 다루는 전전두엽피질의 활동이 뚝 떨어진단다. 이별을 처리하는 뇌의 부위는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뇌의 영역과 같다는 것도 신기하다. 이별이 아프다고 할 때 실제 뼈와 근육이 아픈 것과 똑같단 소리다. ‘시간이 해결한다’는 위대한 명제도 진짜였다. 느리긴 하지만 뇌는 결국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좋은 것’을 더 기억하려는 뇌의 성향이 큰일을 하는 거다.

△1.4㎏짜리 컴퓨터, 믿을 건가 말 건가

저자가 불쑥 던져놓은 정보는 덤이다. 지구 전체 인구의 평균 IQ는 100이란다. ‘어느 나라의 평균 IQ는 85더라’ 따위는 잘못됐다는 건데. IQ테스트가 지능 자체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비교해 얼마나 뛰어난지를 재는 방식이라서다. 정상분포곡선상 인구의 80%는 IQ 80∼100에 걸치고 속한 구조인 거다. 혹시 누가 ‘난 IQ 260’이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100% 허세다. 화성이나 목성에서 측정한 게 아니라면.

키가 큰 사람이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 이것도 사실이다. 키와 지능의 상관관계는 5명 중 1명꼴. 그러면 일단 키를 키워야 하나. 유전이냐 양육이냐는 늘 따라붙는 문제지만 지금은 키가 아닌 뇌 얘기 중이니 접어두자.

책은 흥미유발 단계를 넘어 썩 ‘재미있다’. 의학지식과 신변잡기를 교묘히 연결한 지점에선 경외감이 생길 정도다. 그렇다면 한 가지, 처음 의도대로 뇌와 인간의 공존프로젝트는 순조로운가. 서로 관계를 맺고 소통까지 한다면 콧노래가 절로 나와야 하지만 사실 그렇진 않은 듯하다. 인간세계에선 여전히 험악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으니. 그래도 저자는 이렇게 타협하잖다. 1.4㎏짜리 컴퓨터를 더 이상 신뢰하진 못하더라도 이해는 하자고. 혹시 일을 그르쳐도 ‘인간’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함께 사는 ‘뇌’ 그가 잘못한 거니. 덕분에 비빌 언덕 하나씩은 마련한 셈이다. 의도치 않은 잘못을 했다고 치자. 이젠 이렇게 말하면 된다. “미안합니다. 같이 사는 뇌가 사고를 쳤네요.”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