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아버지'가 말년에 지은 4평 통나무집

김용운 기자I 2016.12.19 05:03:00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 전
최초 현대식아파트 롱샹성당 등
건축물 17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인간이 중심' 철학 4평에 담아
미공개 회화·모형 등 500여 점시
한가람미술관 내년 3월26일까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프랑스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1952).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로 평가받는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르 코르뷔지에의 세계문화유형유산 17건 중 하나다(사진=코바나콘텐츠).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현대식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과 베르포르의 롱샹 순례자성당, 산디에 공장 등 20세기에 지은 건축물 17건을 세계문화유형유산으로 등재했다.

현대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첫 사례였다. 논란으로 삼을 법도 했지만 이 결정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는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본명 에두아르 자네레·1887∼1965)가 설계한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7개국에 흩어져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17건을 세계문화유형유산으로 등재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작품과 연구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르 코르뷔지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기술과 개념을 몸소 실천하며 건축과 도시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켰다.”

◇건축 이면에 스민 예술에 대한 열정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여는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4평의 기적’ 전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재단과 함께 기획한 국내 최대 규모의 르 코르뷔지에 전시다. 내년 3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삶과 건축철학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과 자료 500여점을 선보인다. 이 중 140점은 일반에 공개한 적이 없던 미공개 작품과 자료다.

생전의 르 코르뷔지에가 작업실에서 고양이와 식사하는 모습(사진=코바나콘텐츠).
르 코르뷔지에는 1887년 스위스에서 시계공업으로 유명한 라 쇼드퐁에서 태어났다. 시계를 만드는 가업을 잇기 위해 라 쇼드퐁 미술학교에 진학한 르 코르뷔지에는 시계장식과 조각공예를 배웠다. 하지민 당시 스승인 샤를 레플라트니는 제자에게 건축가가 될 것을 권유한다. 스승의 권유를 받아들인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 진로를 변경한다. 두각은 바로 드러냈다. 19세에 생애 첫 건축설계인 팔레저택 설계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고 성공적으로 작업을 마친 것이다. 이후 르 코르뷔지에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프랑스 파리를 돌아보는 1년여간의 세계여행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몸에 새긴다.

이번 전시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유년시절부터 건축가로 성장하고 활약하던 시기까지 즐겨 그렸던 회화와 드로잉 등의 미술작품이 많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스스로를 화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회화와 드로잉을 남겼다. 1913년에는 프랑스 미술전람회인 살롱 도톤에 수채화 10점을 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르 코르뷔지에의 회화보다는 건축에 더 환호했다.

르 코르뷔지에 ‘튤립다발 앞에 앉은 여성’(1917)(사진=코바나콘텐츠)


피카소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입체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작품도 적잖이 그렸다. 생전에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회화작업에 대해 ‘비밀스러운 연구’라고 명명한 후 초상화와 정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회화 속에 건축의 비밀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3분의 2가량을 회화와 드로잉, 스케치 작품으로 배치한 이유기도 하다. 덕분에 위대한 건축가가 내면에 간직했을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4평 오두막에 집대성한 건축철학

르 코르뷔지에가 위대한 건축가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명제를 통해 “건축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고 선언했고 이를 몸소 구현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살 수 있는 건축을 고심했다. 특히 1차대전과 2차대전으로 주거지가 대거 파괴된 상황에서 벽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식 공법 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신 철근 콘크리트 공법의 건축으로 주거공간의 혁명을 가져왔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프랑스의 롱샹 성당(1955). 20세기 최고의 종교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르 코르뷔지에의 세계문화유형유산 17건 중 하나다(사진=코바나콘텐츠).


나아가 인간의 동선을 최적화한 모듈러방식을 고안해 건축의 표준화를 이끌었다. 세계 최초로 대규모 현대식 아파트의 효시로 불리는 위니테 다비타시옹이 대표적인 예다. 1952년 준공한 위니테 다비타시옹은 이후 현대 아파트의 기준이 됐고 세계의 주택난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살았던 4평짜리 통나무집 ‘카프 마르탱’(사진=코바나콘텐츠).
전시에선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비롯해 프랑스 사보아 주택, 롱샹 성당, 일본 도쿄국립서양미술관 등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건물들의 모형과 설계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발표 당시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모듈러이론의 탄생 과정과 아인슈타인과 얽힌 일화도 선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전시물은 전시장 출구에 설치한 통나무집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살았던 4평짜리 통나무집 ‘카프 마르탱’을 재현한 공간이다. 장식을 싫어하고 실용성을 추구한 르 코르뷔지에는 노년으로 갈수록 단순하고 소박한 공간을 선호했다. 20세기 도시의 풍경을 바꿔놨지만 이 현대건축의 거장은 4평짜리 통나무 집에서 “난 여기서 왕자처럼 행복하다네. 게다가 자유는 덤이지”라며 만족해했다고 한다.

결국 건축이란 인간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감싸안고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전시장의 ‘통나무집’은 압축해서 보여준다. 전시를 기념해 일본의 건축거장으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가 만든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모형 50점과 드로잉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관람료는 성인 1만 5000원.

르 코르뷔지에의 ‘하얀 바닥에 세 여인’(사진=코바나콘텐츠).
르 코르뷔지에의 ‘고양이와 여인 그리고 차 주전자’(1928)(사진=코바나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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