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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없이 값싼 에너지는 없다[전문기자칼럼]

윤종성 기자I 2024.06.12 05:00:00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이데일리가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와 함께 진행한 ‘공공기관 종합평가’는 공공기관들의 열악한 재무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공공기관 총부채는 1년새 38조원 늘어 709조원까지 불어났고, 이자비용은 11조원을 넘겼다. 조사 대상 공공기관 328곳중 58%인 189곳에서 부채가 전년대비 증가했다. 정부가 집중 관리한다던 재무위험기관마저도 14곳 중 7곳의 부채가 1년새 더 늘었다.

한국전력(015760)한국가스공사(036460)의 재무상황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작년말 기준 부채는 각각 202조4500억원, 47조4300억원으로 최다 부채기관 1, 3위에 올랐다. 두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무려 543.3%, 482.7%였고, 한 해 동안 이자비용으로 쓴 돈은 6조1300억원(한전 4조4500억원, 가스공사 1조6800억원)에 달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제 때 공공요금에 반영하지 못해 재무 구조가 극도로 악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판매가가 원가보다 낮은 ‘역마진’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부채 증가 → 이자비용 증가 →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1∼2022년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인상률은 21.1%에 그쳤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702.7%), 영국(173.7%), 독일(46.5%), 일본(44.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과도하게 전기요금 인상을 억누른 결과, 2021∼2023년 누적된 한전의 적자는 43조원에 달했다.

가스공사도 마찬가지다. 2022년 이후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200% 급등했지만, 국내 가스요금은 43% 조정되는데 그쳤다. 2020년 1조2100억원이었던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2023년 15조7600억원으로 13배 늘었다. 미수금은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가스를 공급한 뒤 원가와 공급가의 차액을 향후 받을 ‘외상값’으로 분류한 것으로, 사실상 영업손실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과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이 일주일 간격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요금 현실화’를 간곡히 호소한 것도 이같은 전례없는 재무 위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두 회사의 위기 극복을 위해선 올 3분기 전기요금 약 10%, 가스요금 약 20%를 올릴 것을 권고했다. 두 회사 CEO도 이를 잘 알지만, 요금을 결정하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눈치를 보느라 구체적인 인상폭은 입도 벙긋 못한다.

고물가의 장기화 속에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정부의 고민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한전과 가스공사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국제 시세 대비 현저히 낮은 전기·가스요금을 계속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요금 현실화가 지연될수록 커지는 두 공기업의 부실은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정부는 3조6000억원대 적자를 낸 한전에 6680억원을 투입한 전력이 있다. 결국 더 큰 국민 부담과 피해로 돌아오는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대가없이 값싼 전기·가스도 없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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