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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vs 중도' 유럽의회 둘로 쪼개질 듯…EU 정책도 ‘빨간불’

방성훈 기자I 2024.06.11 04:00:00

유럽 전역서 극우 약진…패배 충격 마크롱 총선 카드
중도 가까스로 체면치레…폰데어라이엔 연임 길 열려
녹색당 의석 급감…기후변화 등 환경정책 후퇴 시사
국방·이민 등 각종 현안서도 충돌 가능성…"분열 심화"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즘 진영의 의석이 대폭 늘어났다. 경제난, 반(反)이민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극우 세력의 약진은 향후 5년 동안 유럽연합(EU)의 각종 정책 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유럽 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고 그동안 추진해 온 각종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10일(현지시간) 유럽선거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이끄는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승리를 축하하며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


프랑스·이탈리아 극우 완승…독일서도 2위 급부상

EU가 집계한 유럽의회 선거 잠정 결과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오전 11시 38분 기준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은 유럽의회 전체 의석(720석) 가운데 185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론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동맹(S&D) 연합이 137석, 중도진보 성향의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이 79석으로 뒤를 이었다. 중도 진영으로 대표되는 이들 세 정당이 확보한 의석은 총 401석으로 약 56%를 차지한다.

강경우파인 유럽보수와개혁(ECR)과 극우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각각 73석, 58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들이 이들 두 연합에 속해 있다. 남은 의석들은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에 52석, 무소속에 46석, 좌파(The Left)에 36석, 기타 신생 정당 등에 54석이 각각 배정됐다. 신생 정당은 대부분이 극우 성향으로 간주된다.

각국의 의원 수는 인구비례를 고려해 할당되는데, 독일이 96석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론 프랑스(81석), 이탈리아(76석), 스페인(61석), 폴란드(53석) 등의 순이다. 인구가 적은 국가는 리스본 조약에 따라 최소 6석이 보장된다. 선출된 의원은 EU의 입법,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갖게 되며 임기는 5년이다.

국가별 선거 결과는 EU 내 1~3위 경제대국이자 주요7개국(G7)에 속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선거 결과가 특히 중요하다.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예상 득표율이 31.5%로 에마뉘엘 마크롱의 르네상스당(14.5%)을 두 배 이상 누르고 압승했다. RN은 ID에 속해 있다. BBC는 “프랑스의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정당 출신인 적은 종종 있었지만, 극우 출신 총리는 없었다”고 짚었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패배 충격에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독일에선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예상 득표율 30.3%로 1위를 차지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15.6%)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14.1%)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선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잠정 집계에서 28.59%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 헝가리, 벨기에, 스페인, 폴란드 등 유럽 곳곳에서 극우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중도 진영은 체면 치레를 한 덕분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연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다만 그의 임기 연장을 위해선 361표가 필요한데, 중도 진영에서 몇 명의 의원들이 이탈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전날 밤 연설에서 “강한 유럽을 위한 중도가 여전히 다수 남아 있다. EPP는 여전히 안정된 닻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극단주의 정당들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려면 정치적 동맹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다른 중도 정당들에 자신의 위원장 연임을 지지해달라고 촉구했다.

마니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에 큰 격차로 패배한 뒤 대국민 연설을 통해 하원을 해산하고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AFP)


극우 EU 내 영향력 확대…각종 정책 제동 가능성

극우 세력의 약진으로 EU의 미래 주요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녹색당의 의석이 18석 줄어든 것에서 기후변화 정책의 후퇴 가능성이 엿보인다.

CNBC는 “기후변화와 이민자 정책부터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롯한 국방 정책, 미래 산업 전략 등까지 그동안 추진해온 각종 법안의 통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늘어난 의석수 만큼 극우 진영이 EU 주요 정책 전반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의미다. CNBC는 “유럽의회 내부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변화는 EU 뿐 아니라 외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유한 서유럽 국가들과 가난한 동유럽 국가들 간 분담금 갈등이나 일부 회원국의 EU 탈퇴 가능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극단적 전망도 나온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의 극우정당들은 유럽의 경제난이 단일 통화(유로·Euro) 체제에 따른 무역불균형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르미다 판 리즈 선임연구원은 “극우의 영향력은 이미 EU 내부에서 느껴지고 있지만, (이번 선거 이후)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EU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탄소중립 정책은 정말로 위기에 놓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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