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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韓게임산업]①판매허가 틀어막고, 韓시장엔 자본침투…'게임굴기' 中과 게임이 안된...

노재웅 기자I 2019.01.07 05:00:00

중국에선 규제로, 한국에선 자본·기술로
커가는 중국의 한국 게임산업 영향력
'매각-협업-3국 진출'...韓게임사 갈림길

던전앤파이터. 넥슨 제공
[이데일리 노재웅 기자] “지금이 넥슨을 매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다.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창업자인 김정주 NXC 대표가)가장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이 매물로 나온다는 소식에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연초부터 불거져 나온 김정주 대표의 넥슨 매각 추진 소식에 게임업계는 충격에 빠졌으나, 김 대표를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은 타고난 장사꾼인 그가 넥슨 매각을 추진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봤다.

넥슨은 지난해 10%대 실적 성장을 기록했으나 한국 게임산업은 그다지 좋지 못한 한 해를 보냈다. 넥슨과 함께 이른바 ‘3N’으로 불리는 넷마블(251270)엔씨소프트(036570)의 실적이 모두 고꾸라졌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미미했다. 여기에는 굳게 닫힌 중국 시장의 영향이 컸다.

◇사상최대 매출에도 中 불안감에 발목

넥슨의 3분기 실적 공개 당시 발표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예상 매출은 459억∼500억엔(한화 약 4777억∼5204억원), 영업이익은 64억∼88억엔(약 666억∼916억원)이다.

이를 반영해 넥슨의 지난해 연간매출을 추정하면 2조5600여억원, 영업이익은 1조100여억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였던 2017년(각 2조2987억원, 8856억원)보다 각 11.5%, 14.7% 성장한 것이다. 특히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국내 게임업계 빅3 가운데 처음이다. 작년 3분기 누적실적과 4분기 증권사 컨센서스를 종합하면 넷마블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1040억원(-13.2%)과 2798억원(-45.1%), 엔씨소프트는 1조7205억원(-2.2%)과 6354억원(+8.62%)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실적만 놓고 본다면 회사를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 대한 불안감이 넥슨의 발목을 잡고 있다.

넥슨은 지난 2016년 출시 23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서든어택2’를 비롯해 2010년 이후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흥행 신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10년 넘게 인기를 구가하는 ‘던전앤파이터’가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넥슨의 현재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국은 온라인게임윤리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게임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에 나선데다, 넥슨의 게임을 유통하는 텐센트가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어 시장 전망이 매우 어두워졌다.

던전앤파이터 단일 게임으로 연간 1조원의 로열티를 넥슨에 지급하고 있는 텐센트는 중국 당국의 규제 뭇매에 시달리며 ‘몬스터헌터: 월드’ 출시 직후 판호를 취소당했으며, 청소년 시력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된 일명 ‘게임시간 총량제’에 직격타를 맞기도 했다. 이로 인해 텐센트는 지난해 이례적인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중국산 게임, 국내 게임시장 침투 가속화

중국 시장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비단 넥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가 9개월 만에 게임 판호(판매 허가) 발급을 재개했지만, 국내 게임사들은 물론 국내 게임사들이 파트너십을 맺은 텐센트 게임이 포함되지 않았다. 주로 텐센트를 통해 중국에 진출해온 국내 게임 업계에 뼈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다.

현재 매년 중국에서 수천억원을 벌어들이는 넥슨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가 텐센트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으며,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펍지주식회사 ‘배틀그라운드’, 넷마블 ‘리니지2 레볼루션’ 등이 텐센트와 계약을 맺고 중국 진출을 앞둔 상태였다.

막대한 자본력에 우수한 개발 능력까지 갖춘 중국은 자국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게임 산업을 위협하는 가장 큰 대외적 요인이다.

중국계 자본은 이미 국내 게임 시장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카카오의 2대 주주이자 넷마블의 3대 주주이며, 넥슨에 매년 지불하는 던전앤파이터 로열티만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틀그라운드’의 개발사 크래프톤(옛 블루홀)의 지분도 10%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텐센트가 시장의 관측대로 넥슨 지분까지 갖게 된다면, 대형 토종 게임사는 엔씨소프트만 남게 된다.

중국산 게임의 시장 침투도 기세를 타고 매해 성장세를 거듭 중이다. 국내 모바일 매출 순위는 허리 격에 해당하는 6~10위를 모두 중국 게임사들이 점령하고 있다.

◇중국 규제 위기 속 韓게임사 선택은...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한국 게임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지 않다. 넥슨처럼 회사를 매물로 내놓거나 우수한 개발 능력을 입증해 중국 외 다른 먹거리를 찾는 길이다. 또는 중국의 게임 규제에서 상대적인 비호를 받고 있는 중소·중견 게임사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실제 국내 게임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북미, 유럽 등 해외 수익원을 창출하기 위한 계획을 속속 발표했다. 넷마블은 북미와 유럽 등으로 ‘블레이드&소울’의 퍼블리싱 작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위메이드도 ‘이카루스 M’을 올 1분기 일본과 대만에 출시한 뒤 태국, 북미, 유럽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컴투스는 ‘서머너즈워:천공의 아레나‘로 지난달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 등에서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오르는 등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반대로 텐센트나 넷이즈 등 중국 대형 게임사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규제에 막힌 만큼 해외 시장 진출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 시장의 요충지인 한국, 일본, 미국에 모두 법인을 가지고 있는 넥슨은 물론, 국내 게임사들은 여전히 중국 게임사가 탐낼 만한 개발과 서비스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이러한 협업을 바탕으로 신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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