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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엔데믹'은 코로나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양희동 기자I 2022.04.08 05:50:00

김부겸, 2월부터 "엔데믹 준비"…이후 사망 1만명 넘어
WSJ, 확진자 폭증 지적을 'K방역' 성과로 해석
잘못된 예측이 감염 확산과 국민 고통으로 이어져
새 변이 경계하며 중증·사망 낮출 의료시스템 갖춰야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조금 성급하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언젠가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엔데믹(풍토병화)’이 올텐데, ‘일상적 방역·의료체계’의 전환 등은 우리가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될 과제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2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응 전문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정부는 오미크론 유행의 정점을 2월 말에서 3월 초로 예상하고, 밀접접촉자의 격리 의무 폐지,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잠정 중단 등 방역 완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유행의 정점이 오기 전에 방역 조치를 풀면 확진자 폭증으로 인해,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크게 늘 수 있다고 경고하던 상황이었다.

결국 2월 말에서 3월 초 하루 최대 17만명이라던 당시 정부의 정점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3월 3주(13~19일)에 하루 62만명까지 확진자가 늘어났다. 이후에도 전파력이 30~50% 강한 스텔스오미크론(BA.2)의 우세종화로 감소세가 둔화되며, 매일 20만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김부겸 총리가 ‘엔데믹’ 발언을 했던 2월 24일 이후 4월 7일까지 하루 사망자 추이. (자료=질병관리청·단위=명)
특히 사망자는 김부겸 총리의 엔데믹 발언 이후 불과 한 달여만에 1만 693명(하루 평균 254.6명)이 발생했다. 정점 예측이 어긋나면서 먹는 치료제 물량이 부족해 사망자가 더 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전국의 화장시설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장례 이후 며칠씩 대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 총리는 이달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지난달 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를 인용하며 “대한민국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세계 첫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또다시 엔데믹을 언급했다.

하지만 WSJ 기사는 한국이 미국·영국 등의 유행 정점보다 3배가 많은 하루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데도, 확산 방지를 포기하는 상황을 엔데믹 전환에 빗댄 의도가 다분했다. 그런데도 김 총리는 이 기사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엔데믹 전환을 K방역의 성과를 강조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엔데믹이 단순한 유행의 규모가 감소나 코로나의 종식을 뜻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국의 진화 생물학자인 아리스 카츠라스키 옥스포드대 교수는 지난 1월 말 네이처지(紙) 기고에서 “엔데믹이란 단어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가장 오용되는 단어 중 하나가 됐다”며 “코로나19가 자연스럽게 종식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엔데믹은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일정한 균형을 이룬 정적인 유행 상태로 말라리아, 소아마비, 결핵 등이 해당된다”며 “말라리아로 2020년에 60만명 이상, 결핵은 150만명 이상 사망하는 등 광범위하고 치명적일 수 있으며, 정상으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엔데믹 전환을 위해선 오미크론 이후 독성이 더 강한 새로운 변이가 출현하지 않는지, 올 하반기 이후까지 더 지켜봐야한다고 지적한다. 또 독감처럼 낮은 치명률로 계절마다 일정한 규모로 유행하는지 확인해야하고, 중증·사망 위험을 낮출 백신과 치료제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지난달 28일 정례브리핑에서 “새로운 변이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고 국내에서도 발생·유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전염병을 일으키기 위해 끊임없이 인간의 면역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정부가 엔데믹 전환을 코로나의 종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2년 넘게 고통받아온 국민들이 또다시 새로운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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