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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원수다]이웃간 분쟁 "당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유재희 기자I 2013.08.16 07:00:00

층간소음 분쟁 원인 1위..'아이 뛰는 소리'
아래층은 '소음'에 울고 위층은 '담배연기'에 울고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우리는 예로부터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불렀다. 선조들은 마을 공동체 속에서 가족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웃사촌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아파트 등 공동 주거형태가 늘어나면서 공간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공동체 의식 부족과 이기주의 등으로 감성적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이웃은 다툼과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층간 소음과 층간 흡연, 쓰레기 무단 투기, 주차 시비, 애완동물 사육 등 이웃 간 다툼의 원인은 다양해지고 있다. 심지어 이웃간 갈등이 폭력·살인·방화 등 강력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잠 좀 잡시다”… 소음에 지친 아래층 사람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센터 설립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접수된 층간 소음 관련 민원은 총 1만4806건에 달했다. 매달 925건 이상의 민원이 제기된 셈이다.

원인별로 보면는 ‘아이들 뛰는 소리’가 73.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망치질 등 쿵하는 소리(4.2%), 가구 끄는 소리(2.2%), 피아노 등의 악기 소리(2.2%), 세탁기와 청소기 등 가전제품 소리(2%), 화장실 및 샤워소리 등 급배수 소리(1.6%) 등이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성순희(여·65)씨. 그는 1년 전부터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위층에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이사 온 뒤부터다. 밤낮 없이 들리는 아이 뛰는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성씨도 그 또래의 손녀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층을 배려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이가 심하게 뛰어도 웃는 얼굴로 위층 사람들을 대했다. “늦은 시간에는 아
자료: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이가 뛰지 않게 조심시켜 달라”고 요청하거나, 아주 심할 때만 경비실에 민원을 넣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가슴이 뛰고 분노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다. 이제는 막대기를 이용해 천장을 두드리고, 위층으로 찾아가 험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아이 뛰는 소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이밖에 다양한 소음이 이웃 간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인천 연수구 연수동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박승철(48)·임미숙(여·34)씨 부부. 이들은 이른 새벽 이웃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이 깼다. 화가 난 부부는 개 주인인 조수정(여·24)씨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임씨와 조씨는 감정이 격해졌고, 결국 몸싸움으로 번졌다. 임씨는 조씨를 발로 차는 등 폭력을 가했고, 조씨 역시 임씨의 팔을 깨물고 손톱으로 할퀴었다. 결국, 세 사람 모두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며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다. 문제는 애완동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폭력사태로 이어지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완동물과 관련한 이웃 간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는 소음과 배설물 관리가 꼽힌다.

배설물로 인한 갈등은 주인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해결할 수 있지만, 소음은 해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소음 분쟁 해결을 위해선 개의 경우 성대를 수술하는 방법이 있지만, 대부분의 애완동물 주인들은 이에 대해 ‘동물 학대’라며 거부하고 있다.

층간 소음에 따른 분쟁은 감정 싸움을 넘어 강력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많다. 올해 초 설 연휴 때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위층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한다며 항의를 하다 시비가 붙어 두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최근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 5월에는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투던 빌라 2층 집주인이 1층 세입자 집에 불을 질러 2명을 숨지게 했다. 세입자가 방안에 샌드백을 설치해 수시로 두드려 시비가 붙었다가 발생한 사건이다.

◇“아래층 담배 연기 때문에…” ‘층간 흡연’도 골칫거리

층간 소음 못지않게 이웃 간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흡연이다. 특히 창문을 열고 지내야 하는 여름은 층간 흡연 갈등이 가장 심각해지는 계절이다.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영훈(30)씨. 그는 매일 늦은 밤 베란다에서 줄 담배를 피우는 아랫집 사람 때문에 괴롭다. 겨울에야 문을 닫고 있으니 큰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창문을 열어놓다 보니 안방까지 담배연기가 스며든다. 참다못해 아랫집을 찾아가 항의했지만, 아랫집 사람은 “내 집에서 담배도 못 피우느냐”며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험한 말이 오가고, 흉기로 위협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이웃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김씨는 결국 이사를 결심하고, 요즘 단독주택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김씨 사례와 같이 층간 흡연으로 인한 분쟁은 늘고 있지만,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아파트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제재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래층 담배 연기가 올라와서 괴롭다. 피우지 마라’, ‘내 집에서 담배도 못 피우느냐’는 이웃 간 다툼만 무한 반복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에 사는 김동욱(43)씨. 그는 어느 날 베란다 창문 밖에 놓은 화초에 물을 주려다 침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쾌했던 김씨는 창가에 서서 누구의 소행인지 지켜봤다. 한참 뒤 김씨는 위층에 사는 대학생 윤모(23)씨가 침을 뱉는 것을 목격했다. 바로 올라가 학생을 훈계하자, 그의 부모는 사과는커녕 “그럴 수도 있지”라며 자녀를 두둔하고 나섰다. 김씨는 화가 나 학생 아버지 멱살을 잡았고, 결국 고소를 당했다.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한 아파트 게시판에는 ‘누군가 베란다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밖으로 버렸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내용의 공지가 붙었다. 최근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전면 시행, 쓰레기양에 따라 처리 비용이 부과되자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 주민이 불법 투기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거 유형 중 아파트와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65% 수준이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천장과 바닥, 벽을 이웃과 공유하고 있어 언제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자신이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웃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선다면 대부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의 2012년 통계자료를 보면 만남과 대화가 이뤄졌을 때 이웃 간 분쟁 중 65%가 해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이사는 “이웃 간 갈등은 사소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서로 이해하고 원하는 부분을 찾아 자율적으로 합의를 만들어가면 대부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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