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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아름답게 치장된 판타지공간의 빛과 그림자

김보영 기자I 2023.05.01 05:49:00

문화대상 연극부문 심사위원 리뷰
공놀이클럽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황승경 연극평론가] 지난 4월 21일, 44회를 맞이하는 서울연극제가 ‘다시, 축제다!’는 슬로건으로 총 59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 포문은 공놀이클럽의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가 열었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민을 무대에 펼쳐 청년이 직·간접적으로 직면한 문제가 작품 속에서 펼쳐진다.

무대는 서울 성수동이다. 재희, 윤영, 혜정 26살 동갑내기 세 친구는 재희가 계약한 성수동 월세집에서 유트브 채널을 개설해 촬영한다. 그들이 야심차게 개설한 채널의 이름은 버건디 무키 채널. 이 즈음 재희(이봄)는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남자친구 주원(류세일)을 만나고 주원은 채널의 총괄기획을 맡는다. 윤영(김민주)은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더 큰 세상의 경험을 선택하고 혜정(김보경)은 과도한 노출 라이브방송으로 채널에서 퇴출된다. 승승장구하던 재희의 채널은 이젠 구독자 45만 명에 각종 협찬이 끊이지 않는 인기 채널로 등극한다. 유튜브 ‘버건디 무키’ 채널에서 재희는 항상 오프닝 멘트로 타인의 행복을 기원하며 시작한다.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한다. 카메라 속 티 없는 기쁨에 넘치는 재희의 일상은 많은 이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재희도 이를 놓치고 싶지 않다. 혜정은 치명적인 재희의 이중적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주원을 협박해 다시 채널에 복귀할 계획을 세운다. 몇 년 전 비가 몹시 내리던 날, 재희의 발달장애 남동생은 공사장 깊은 물웅덩이에 빠질 위험에 처했었다.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순간에 재희가 우두커니 동생을 바라보고만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영상에 찍힌 것. 이 영상은 대중에게 선하고 밝고 맑은 모습만 선사하던 재희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기록이다. 이 영상이 공유되자 재희를 찬미하던 구독자들은 등을 돌려 일제히 재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결국 세 친구는 처음 시작했던 지점으로 되돌아온다.

연출자 강훈구는 충돌, 동요, 반발, 번민, 대립 등의 인물 간 미묘한 갈등을 동시대에 대한 섬세한 상접과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농밀하게 재구성했다. 세련된 무대와 실험적 구성으로 문화적 차이양상에 주목해 암시적인 예술적 탄력성을 과감 없이 표출한다. 그러나 유려한 무대와 세련되고 기발한 연출에 비해 무대에 오른 희곡은 진부하고 개연성이 결여된다. 대기업조차 언택트에 익숙한 ‘엄지족’과 소통하기위해 유튜브 콘텐츠를 확장하고 더 많은 구독자를 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유튜브 구독자는 팬덤이 아니다. 구독자는 특정 채널이나 크리에이터에 충성심을 보이지 않고 순간적 감정이나 느낌에 의존한다. 45만의 구독자가 순식간에 45명이 될 수 있다는 속성을 알기에 유튜버들은 철저한 관리와 치밀한 기획으로 무장한다. 주인공 재희는 냉혹한 현실과 참담한 상황에서도 유튜버로 도전해 성공했지만, 그에 합당한 철저한 직업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해결하기 위해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으로 스스로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관객에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원의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재희의 수동적인 모습이 각인된다.

문학에서 출발한 ‘영 어덜트 예술’은 ‘미성숙한 청소년 관객의 공감대를 이끄는 것’에 주력하는 ‘청소년 예술’이 아니다. 불안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청소년관객을 위한 교화력과 감화력은 감해지더라도 관객의 연령을 규정치 않고 전 세대 관객을 대상으로 성공, 좌절, 갈등을 함께 고민한다. 인간 경험과 문화를 구현해내는 예술을 연령이라는 잣대로 범주화하기는 모호하지만 재희가 26살 청년이 아니라 16살 청소년이라면 더 설득력이 있어진다.

문제의 영상 속 재희의 행동은 발달장애인 가족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편견을 줄 여지가 충분하다. 발달장애인 가족에 상처를 줄 수 있다. 과용된 감정과 비속어 남용은 청년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사진=공놀이클럽_사진 이지웅)
(사진=공놀이클럽_사진 이지웅)
(사진=공놀이클럽_사진 이지웅)
황승경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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