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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가상자산 시장'…범죄 판치는 놀이터로 전락

조민정 기자I 2023.04.17 06:00:00

주식과 달리 상장기준, 공시 의무 없어
증권성 인정 어려워…자본시장법 피해가
규제도 법안도 없는 '아노미' 상태
'정부, 국회' 방치한 결과…부랴부랴 움직임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일확천금의 꿈을 먹고 자란 가상자산 시장이 어떠한 규제도 없이 그야말로 범죄자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이 된 퓨리에버코인도 시세조종이 이뤄진 김치코인의 일부란 사실이 드러났고, 영세한 코인을 상장해달라며 뒷돈을 주고받은 범죄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아노미(무질서한 혼돈)’ 상태는 코인광풍 시절 정부도, 국회도 나 몰라라 한 결과로 규제법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남 4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재력가 부부 중 남편 유상원(50)이 13일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16일 검찰에 따르면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을 꾸려 구조적 병폐를 집중 수사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 전 직원과 브로커 등 4명을 구속했다. 거래소 관계자들은 상장을 대가로 최대 20억원을 건네 받고 시세조종에 가담했는데, 이들이 거래한 가상자산 중엔 이번 강남 납치·살해사건에서 등장한 퓨리에버코인도 포함됐다.

이는 투자자들의 한탕 욕망이 불러온 ‘코인 광풍’이 불던 당시 정부도, 국회도 손 놓고 방관한 결과다. 2017년 한 차례 상승한 비트코인이 2021년엔 개당 약 8000만원까지 치솟자 빚을 내고 전 재산을 투자하는 ‘영끌족’이 나타나며 코인 광풍이 불었다. 국내 또는 내국인의 주축으로 발행된 김치코인도 이때 무분별하게 거래소에 상장되기 시작했고, 무법지대로 남은 가상자산 시장의 후폭풍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주식시장은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는다. 주식을 상장하기 위해선 한국거래소의 여러 가지 엄격한 조건을 맞춰야 하고, 상장사들은 이후에도 회사의 재무 상황을 알릴 의무가 있다. 허위공시와 인위적인 시세조종도 모두 법적 처벌을 받는다.

반면 가상자산은 증권성 인정이 되지 않아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수 없다. 검찰이 상장 청탁을 받은 일당 4명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대부분 코인들은 증권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시세조종 자체만으로 처벌할 수 없어 거래소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며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가상자산 시장을 처벌하기 위해선 별도 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본법조차 부재하다 보니 가상자산 시장은 공시 의무도, 거래소마다 명확한 상장과 폐지 기준도 밝힐 의무가 없다. 시세조종 등 범죄를 벌이기에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거래소들은 최근 상장심사위원회를 별도 운영하며 코인 상장을 결정하고 있지만, 과거 거래소 설립 초기엔 일부 상장 담당자와 대표가 별다른 기준 없이 코인을 상장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는 투자자 보호의무 등이 담긴 가상자산 법안들을 첫 법안이 발의된 지 22개월 만인 지난달 첫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 강남 납치·살해사건을 계기로 부랴부랴 입법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가상자산 산업을 방치한 정부는 여전히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에 대한 기본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 회장은 “가상자산 사기로 일반 국민들의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지난 정부부터 정치권 모두 책무를 방치하고 손 놓고 있었다”며 “그동안 검찰, 경찰이 손을 댈 수 없었던 건 기본법이 없으니까 관련법만으로 적용을 하다 보니 수사가 너무 힘들었던 탓”이라고 했다. 이어 “가상자산 거래소만 규제해선 안되고, 발행자 규제가 우선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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