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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폭염에도 공사장은 '작업중'…"근로자 작업중지권 보장해야"

박철근 기자I 2018.08.08 05:00:00

옥외작업자 보호 법제화에도 휴게시간 준수 8.5% 그쳐
온열진환 산재 65% '건설업종'서 발생
"폭염 증상이 발생히 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해야"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지난달 30일 광주 서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A(66)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 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튿날인 31일 A씨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평소 지병이 없었다는 동료들의 증언에 따라 경찰은 폭염에 의한 열사병이나 탈진에 따른 의식불명으로 추정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자가 3500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산업현장도 폭염과의 전쟁으로 비상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6일 현재 온열질환자수는 3438명으로 이중 42명이 사망했다. 옥외작업이 많은 건설현장 등에서의 사망재해도 늘고 있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라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노동자에 대해 적절한 휴식을 보장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이라는 모호한 표현 때문에 폭염으로부터 옥외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조치가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온열질환 산재 65% 건설업종에서 발생

7일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올해 옥외작업을 하던 중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사망재해자수는 건설업 3명·농업 2명 등 5명이다. 업종의 특성상 옥외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폭염에 의해 발생한 온열질환 산업재해자 35명 가운데 65.7%인 23명이 건설업종에서 발생했다. 특히 이 기간 중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4명 모두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부검 등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판명해야 한다”면서도 “올해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나면서 옥외작업자의 사망재해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내 공공기관 발주 공사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폭염 건설현장 관리 법제화했지만…현장은 ‘모르쇠’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개정 규칙 566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적절하게 휴식토록 하는 등 노동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폭염관리규칙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난달 20~22일까지 건설·토목 현장노동자 2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휴식시간에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이 26.3%에 불과했다.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1시간 중 10~15분 이상씩 규칙적으로 쉬도록 하고 있다는 응답은 8.5%에 그쳤다.

노동계는 폭염으로부터 옥외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업주의 조치내용을 가이드라인이 아닌 규칙 등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15년 발간한 ‘유해작업 휴식 등 근로조건 개선조치에 대한 법적 근거 및 시행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와 중국은 실외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예방을 노동법에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에서, 캐나다는 대부분의 주에서 주법으로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옥외작업 근로자 건강보호지침을 고시로 제시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아랍에미리트는 지난 2004년부터 건설현장과 보안경비원, 배달운전자와 같은 노동자는 9월 15일까지 오후 12시 30분에서 오후 3시 사이에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는 사업체는 적발된 노동자 1인당 5000디르함(한화 약 153만원), 최대 5만디르함(약 153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 영업정지 조치도 가능하다.

김현주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사회참여부장은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준수토록 홍보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감독관뿐만 아니라 모든 근로감독관들이 폭염 피해 예방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열경련이나 열탈진 등 폭염관련 증상이 발생하면 노동자가 스스로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3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재난안전상황실에서 폭염으로 인한 인명·재산피해 최소화를 위한 중앙부처와 17개 시도 재난안전실 등 범정부 폭염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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