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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호주에 있지만 한국에 없는 연금 백만장자…기대난망일까

이지현 기자I 2022.05.31 05:34:36

디폴트옵션 도입 1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려 여전
日처럼 원금보장형 선호 시 제도 변화 효과 없을 수도
운용기관 좋은 상품 개발 개인들의 투자 관심 높여야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젊을 때 고생하면 은퇴 후 낙이 온다.’ 미국 등 퇴직연금 선진국에선 통하지만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미국 퇴직연금 백만장자는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41만명으로 매년 20% 이상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형 퇴직계좌(IRA) 잔액이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도 34만1600여명이다. 퇴직연금이 은퇴 후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 연금은 소득 대체라는 말이 무색하다. 정부도 노인 빈곤을 막고자 기초노령연금 외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라는 2층, 3층 안전장치를 마련했지만, 손에 쥐는 돈은 초라하다. 기초연금 30만원에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57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퇴직연금이지만, 지난해 수익률은 2%에 그치고 있다. 어디서부터 다른 걸까?

◇ 연금백만장자…제도·투자자 시너지

30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정기적으로 퇴직연금제도를 보고 중인 국가는 20개국이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소득의 일부를 퇴직연금으로 구분해 투자하도록 한 것인데, 대부분 원금손실을 우려해 가만히 두거나 원금보장형에 두다 보니 기대했던 행복한 노후와는 거리가 먼 결과를 얻고 말았다. 이에 미국은 2006년, 영국은 2008년, 호주는 2013년에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하며 연금부자들을 탄생시켰다. 이 외에도 캐나다, 스웨덴, 이탈리아, 멕시코, 칠레 등 16개국이 디폴트옵션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가 따로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사전에 미리 정한 방법대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한마디로 원금손실을 우려해 원금보장형에만 넣어두던 퇴직연금을 적극적인 투자활동이 없더라도 조금 더 높은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미국과 호주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자산의 90% 이상을 투자형 상품에 투입하며 연금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401K’로 대표되는 미국 퇴직연금은 매달 일정액의 퇴직금을 회사와 근로자가 매칭하는 방식으로 적립해 다양한 투자상품에 맡겨 노후보장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핵심은 세제혜택이다. 일정한도 내에서 소득공제와 비과세 혜택을 누리면서 퇴직계좌에 연금을 적립하면 근로자 은퇴 후에 낮은 소득세율로 인출할 수 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401K 수익률은 연평균 9.49%나 된다. 막대한 자금이 장기투자 시장으로 흘러들며 자본시장이 우상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덩달아 은퇴자들의 수익률도 상향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호주의 퇴직연금제도인 ‘슈퍼 에뉴에이션(Super Annuation·슈퍼)’과 유사하다. 고용주가 근로자의 임금 중 9.5%를 적립하는 형태다. 호주도 대부분이 원금보장형을 선택하며 제도 도입취지와 맞지 않자 호주 정부는 2013년 새로운 디폴트옵션을 제공하는 ‘마이 슈퍼’ 상품도 도입했다. 하나의 기금에 오직 하나의 디폴트옵션만 설정할 수 있도록 해 기금 간 경쟁 구도를 강화한 것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원금보장형 상품을 제외했다. 한국금융연구원(KIF)에 따르면 계좌잔액은 5만달러로 ‘마이 슈퍼’ 옵션에만 투자한 고객의 2010~2019년 평균 수익률은 8.99%에 달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호주 모두 사회적으로 계획된 방식에 따라 평균적인 리스크 프리미엄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 日처럼 원금보장형 열어둔 韓…수익률 우려

정부의 ‘2021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95조6000억원으로 1년만에 40조원이 증가했다. 퇴직연금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간 수익률은 2%로 전년 대비 0.58%포인트(p) 하락했다. 실적배당형 수익률은 증시 하락에도 6.42%를 유지했지만, 원리금보장형 수익률이 전년(1.68%) 대비 0.33%p 하락한 1.35%를 기록하며 전체 수익률을 낮춘 것이다. 문제는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86.4%(255조4000억원)로 퇴직연금 가입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원금 손실을 우려하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오는 7월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예정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디폴트옵션 운영상품을 최대 10개(고위험 3개, 중위험 3개, 저위험 3개, 원리금 보장형 1개)로 구성하도록 했는데, 여기에 원리금 보장형을 포함했다.

일본 사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18년에 확정기여연금법을 개정하며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다. 일본은 복수의 상품 중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해 평균 수익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크게 떨어졌다. 사실상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높아 실패한 일본의 전철을 밟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7월 12일) 디폴트옵션이 들어와도 시장 수익률이 급격하게 변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현재와 같이 원금보장형으로 쏠림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운영사들은 투자자에 유리한 퇴직연금 상품을 만들어야 하고 개인들은 투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여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정원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입자들이 실적배당형에 대해 인지해 가면서 투자 마인드도 변화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IRP 적립금은 295조6000억원으로 3년 연속 30%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최대 700만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해 직장인들의 필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탄력이 붙은 IRP 시장 활성화를 위한 추가 세제지원책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원석 연구원은 “소득이 낮은 이들의 경우 적립 여력이 없어 IRP 유인 효과가 약해 빠르게 늘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며 “IRP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장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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