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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이순신의 리더십, 김연경의 리더십

이준기 기자I 2021.08.09 05:00:00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단 13척의 배로 왜선 300백여 척을 물리친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전쟁사에 길이 남을 역사가 됐다. 당시 이순신은 왜선 기세에 눌려 전선에서 물러났던 부하 중군장 김응함에게 “당장 처형하고 싶으나 적의 형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했다 한다. 김응함은 목숨을 바쳤고 대승에 일조했다. 무차별적 처벌이 아닌 ‘사면’을 통한 기회 부여를 택한 이순신의 리더십이 돋보인 대목이다.

지금 재계 최대 화두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 문제일 터다. 지난달 말로 가석방 조건인 형기의 60%를 채우자 ‘가석방은 재벌 특혜’란 주장과 ‘가석방을 넘어 아예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부딪치며 논란은 증폭 중이다.

가석방마저 반대하는 쪽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재용이 없다고 삼성전자가 안 될 게 뭐가 있느냐’란 거다.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고 하는 얘기다. 기업경영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작금의 호실적은 과거 이뤄진 과감한 의사결정·전략적 선행투자와 코로나발 반도체 특수의 결과물이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비전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로 도약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청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 사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은 물론 일본·독일 등에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렸고 미국 인텔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을 태세다. 인텔은 글로벌 3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등 굵직한 투자를 공언하기도 했다. 이제 하원의 문턱만 남은 반도체 육성법안(5년간 520억달러 투자)은 미 기업인 인텔에 날개를 달아줄 게 뻔하다. 올 들어 코스피 지수가 14% 오르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2% 상승하는데 그친 배경이다.

‘전문경영인이 더 잘할 텐데’라는 주장은 더 아쉽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제3차 세계대전’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이 치열한데, 이 부회장 없이 CEO 몇 명이 대형 인수합병(M&A) 등 중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 자체가 가당찮다.

물론 작금의 여론에 비춰봤을 때 이 부회장은 13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 생활을 벗어날 공산은 크다. 가석방 심사가 매달 이뤄지는 만큼 이번 8·15 광복절 가석방이 불발되더라도 9월 정기 가석방, 10월 교정의날 가석방 등 기회는 줄줄이 있다. 그러나 TSMC 류더인 회장·인텔 팻 겔싱어 CEO 등 경쟁자와 맞붙기 위해선 경영에 즉시 복귀할 수 있는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재계는 물론 각계 주류의 여론인 것 같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세계 랭킹 11위 불과했던 우리 여자 배구대표팀이 4·5위인 일본·터키를 나란히 꺾고 써낸 4강 신화를 주장 김연경의 역할을 빼고 논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엔 김연경의 리더십이, 문재인 대통령에겐 이순신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18년 7월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 도착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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