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재계 최대 화두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거취 문제일 터다. 지난달 말로 가석방 조건인 형기의 60%를 채우자 ‘가석방은 재벌 특혜’란 주장과 ‘가석방을 넘어 아예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부딪치며 논란은 증폭 중이다.
가석방마저 반대하는 쪽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재용이 없다고 삼성전자가 안 될 게 뭐가 있느냐’란 거다.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고 하는 얘기다. 기업경영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작금의 호실적은 과거 이뤄진 과감한 의사결정·전략적 선행투자와 코로나발 반도체 특수의 결과물이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비전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로 도약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청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그 사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은 물론 일본·독일 등에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렸고 미국 인텔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을 태세다. 인텔은 글로벌 3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등 굵직한 투자를 공언하기도 했다. 이제 하원의 문턱만 남은 반도체 육성법안(5년간 520억달러 투자)은 미 기업인 인텔에 날개를 달아줄 게 뻔하다. 올 들어 코스피 지수가 14% 오르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2% 상승하는데 그친 배경이다.
‘전문경영인이 더 잘할 텐데’라는 주장은 더 아쉽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제3차 세계대전’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이 치열한데, 이 부회장 없이 CEO 몇 명이 대형 인수합병(M&A) 등 중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 자체가 가당찮다.
물론 작금의 여론에 비춰봤을 때 이 부회장은 13일 오전 10시 서울구치소 생활을 벗어날 공산은 크다. 가석방 심사가 매달 이뤄지는 만큼 이번 8·15 광복절 가석방이 불발되더라도 9월 정기 가석방, 10월 교정의날 가석방 등 기회는 줄줄이 있다. 그러나 TSMC 류더인 회장·인텔 팻 겔싱어 CEO 등 경쟁자와 맞붙기 위해선 경영에 즉시 복귀할 수 있는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재계는 물론 각계 주류의 여론인 것 같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세계 랭킹 11위 불과했던 우리 여자 배구대표팀이 4·5위인 일본·터키를 나란히 꺾고 써낸 4강 신화를 주장 김연경의 역할을 빼고 논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엔 김연경의 리더십이, 문재인 대통령에겐 이순신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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