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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간장게장으로 경종을 죽였다?

오현주 기자I 2017.02.01 00:30:10

사랑·권력·정치 등 키워드로
'음식' 배경·편견·오해 살펴
조선 뒤흔든 '게장' 독살설
'콜라정치학' 美 대통령 등
성차별·이념·권력 중심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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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패설
김정희|232쪽|앤길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역사이야기 한 토막으로 시작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조선 20대 임금 경종은 재위기간이 4년(1720∼1724)밖에 되지 않는다. 병약했던 데다 자식도 없어 이복동생인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로 책봉했다. 당시는 노론·소론이 치고받던 당쟁의 절정기. 경종은 노론의 압박에 시달려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물러날 처지에까지 몰린 딱한 왕이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사실.

입이 짧은 경종이 유독 좋아한 음식이 있었단다. 간장게장이다. 오죽했으면 죽기 전에 먹은 음식도 게장이었을까. 그런데 문제는 경종이 급사하면서 불거졌다. 연잉군이 게장을 진상했다는 소문이 나돈 것이다. 소문만이 아니었나 보다. ‘조선왕조실록’은 “어제 임금이 게장과 생감을 드셨는데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파했다”고 기록했다. 정치판은 요동을 쳤다.

연잉군이 경종에게 간장게장을 자주 올린 건 사실인 듯하다. “임금의 입맛을 돋우려 게장을 올렸다. 그제야 수라를 조금씩 들게 되니 후식으로 생감을 올렸다”는 후대의 기록이 증명한다. 그런데 경종을 죽인 게 정말 간장게장이었을까.

이 비극적 해프닝이 빚어진 결정적 이유가 있다. ‘음식궁합’이란 거다. 힌트는 생감이다. 16세기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은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가 난다”고 쓰고 있다. 그만큼 당시는 게와 감을 상극으로 여겼던 터. 그럼에도 연잉군은 음식을 먹는 경종이 반가워 주위반대를 무릅쓰고 게와 감을 계속 권했던 것이다. ‘독살론’의 주범으로 몰릴 만한 정황이었다. 현대 한의학은 경종의 사인을 급체에 따른 합병증인 복막염으로 추측한다. 정상체력이라면 아무리 상극음식을 먹었어도 하룻밤 새 사망에 이르진 않았을 거다. 결국 10년 이상 골골하던 체력이 문제였던 셈이다.

책은 음식에 관한 특별한 담론이다. 식탁을 중심으로 돌린 세상이야기기도 하다. 굳이 키워드를 찾자면 사랑·금기·신화·권력·정치·사회다. 화려한 레시피로 성찬을 차려 시선을 끌자는 취지는 아니란 얘기다. 음식스토리텔러로 활동하는 식품공학박사인 저자는 세상에 음식만큼 막강한 지배력은 없다고 단언한다. 개인에겐 육체와 정신을 연결하는 생리적 도구고 사회적으론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물리적 관계라고. 그렇다고 모두에게 균등했던 건 아니라고 했다. “음식은 힘 있는 자들의 권력에서 만들어졌고 그것이 보통상식이 됐다”는 것이다. 음식이 결코 음식으로 끝나지 않은 배경. 책은 그 앞뒤 사정까지 담은 한 상이다.

▲섹시푸드는 뭐고 에로틱푸드는 뭐냐

사이가 안 좋으면 음식을 같이 먹는 것부터 고통이다. 전부를 내줬어도 음식 나누기를 거절하면 싸움이 터진다. ‘좋은 음식’에 대한 오해도 상황을 부추겼을 거다.

‘굴’은 남성에게 섹시푸드로 꼽힌다.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매일 저녁 먹었다는 설이 가장 크다. 그뿐인가. 전쟁영웅 나폴레옹도, 대작가 발자크도, 철혈정책의 비스마르크도 굴 마니아였다니. 물론 칼슘·단백질부터 비타민·미네랄, 특히 정자생산에 좋다는 아연까지 굴이 종합영양소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날것을 잘 먹지 않는 서양인이 유독 생으로 즐긴 음식이라 생긴 편견이라고 저자는 봤다. 섹시푸드로 방점을 찍은 건 순전히 굴의 흐물흐물한 외형 탓이었을 거란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섹시푸드니 에로틱푸드니 하는 것도 낭설인가. 아니다. 곰을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마늘’을 저자는 각별하게 꼽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만든 것도 마늘이었다고. 노역 노동자에게 건축기간 동안 먹인 음식이었단다. 여기에 양파·부추를 곁들여 3종세트를 완성하면 동서양을 아울러 가장 막강한 정력제·강장제라고 했다. 같은 효능의 음식은 더 있다. 장어와 생강, 새우, 석류, 참치와 연어, 다크초콜릿, 토마토 등등.

다만 이들 음식으로 생긴 성차별은 견제할 지점이라고 했다. 음식은 여성이 생산하고 남성이 소비한다는 관념 말이다. 때론 남성의 우월의식이 뻗쳐 ‘오버’에 이르기도 한다. 남성 자신은 원하는 건 뭐든 먹을 수 있고 여성이 먹는 것까지 대신 정해줄 수 있다는.

▲‘콜라정치학’은 여전히 진행 중

음식을 둘러싼 권력관계는 성차별로 끝나지 않았다. 여기 한 장면을 보자. 냉전시대 소련 모스크바에서 박람회가 열렸다. 모처럼 미국 대표가 참가한 행사. 공식 청량음료가 펩시콜라였나 보다. 소련 총리 후르쇼프가 보란 듯 펩시를 마셨다. 그걸 지켜본 미국 부통령 닉슨은 굳이 펩시를 피해 다른 음료를 선택했다는 것. ‘콜라정치학’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들은 정치자금을 이유로 콜라 병과 캔을 들었다. 참고로 카터는 코카를, 부시는 펩시를 선호했다. 클린턴은 코카회사의 스프라이트를 든 채 환하게 웃었고.

브랜드가 찍힌 공산품이야 그렇다고 치자. 애꿎은 토마토가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2012년 한 이슬람 극보수단체가 토마토를 금기식품으로 발표한 일인데. 토마토를 횡단면으로 잘랐더니 십자가 모양이 나오더란 게 이유다. 기독교를 칭송하는 음식이니 먹지 말라는 논리였다.

▲‘치킨에선 치킨 맛’이 정석

책의 미덕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들며 오로지 음식만을 꿰뚫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쉬움이 없지 않다. 구성이 느슨해져 정제되지 않은 듯한 편성이 돼버린 거다. 체계를 버리고 스토리를 챙긴 형태라고 할까.

그 수많은 샛길을 뚫고 이른 저자의 결론은? 이 순간에도 끝없는 시험과 선택에 놓인 소비자에게로 모았다. 극대화한 식품산업의 경쟁에 우롱당하는 건 결국 음식에 빠진 소비자라는 거다. 식품권장사항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양소로 법석을 떨며, ‘곱빼기’를 구매하는 게 두 배 이상 효율적이라고 떠들어대는 등. 재료가 점차 밍밍해지자 강렬한 ‘원래의 맛’을 위해 기계적으로 향을 첨가하는 일도 있다.

‘미국 요리의 대모’라 불리는 줄리아 차일드(1912~2004)의 인용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좋은 치킨은 치킨 맛이 나야 한다”고 했다. 권력·정치·이데올로기 다 빼내고 제맛 내는 음식이 과연 몇이나 되더냐고 대신 묻는 듯하다. 맛집 탐방하느라 길거리를 헤매고 다닐 일만은 아니란 일침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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