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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한국 전기산업과 원자력산업의 메카 '창원산업단지'

이승현 기자I 2014.11.26 05:26:52

전기연, 세계 3대 전기기기 시험인증기관..의료용 레이저 등 미래형 전기산업도 준비
국내 유일 '원자력 공장' 두산중공업, 국내외 원전설비 공급 도맡아

[창원 =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보유한 4000MVA급 대전력시험설비. 이 시험설비는 차단기와 변압기, 개폐기 등 중전기기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전력을 가하는 모의 합선사고 시험을 통해 기기의 성능과 안전성 등을 검증한다. KERI 제공
전기를 연구하는 한국전기연구원(KERI)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관이다. 하지만 대형 중공업 기업과 전기업체는 검증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때문인지 KERI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25개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구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경남의 창원국가산업단지이다.

지난 21일 창원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현대위아(011210)두산중공업(034020), 효성(004800)중공업, LS(006260)전선 등을 30여분간 스치며 달리니 16만여㎡ 면적의 KERI 창원 본원에 도착했다.

지난 1976년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에서 출발한 KERI는 세계 3대 국제 공인 전자기기 시험인증기관으로 꼽힌다. 이 기관은 아울러 전자파 발생이 적은 초고압직류송전(HDVC) 기술개발과 전기자동차·전기선박·전기 의료기기 등 하드웨어(HW) 개발, 차세대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SW) 개발 등 국내 전기분야 연구개발(R&D)도 도맡고 있다.

이어 국내 유일한 ‘원자력 공장’인 창원 두산중공업 공장도 찾았다. 이 곳은 원자력발전소의 심장인 원자로 압력용기(우라늄 핵분열반응 발생)를 생산해 국내와 해외 원전에 공급한다.

◇원전 4기 전력을 한번에..전세계 통용되는 대전력시험 인증

전기가 발전소에서 생산돼 변전소와 배전소 등을 거쳐 공장과 가정 등에 유입되려면 높은 전압과 전류가 가해지는 다양한 전력기기들이 필요하다. 이들 기기에서 합선(단락)과 지락(대지와의 접촉) 등이 발생하면 정전사태나 화재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성능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서 유일한 KERI의 대전력시험설비는 최대 4000MVA의 엄청난 전력을 차단기와 변압기, 개폐기 등 중전기기에 가해 모의 합선사고 시험을 한다. 인위적으로 합선을 시킨 뒤 제 기능을 발휘하는지 보는 것이다.

최익순 KERI 책임연구원은 “아주 짧은 순간(1초 안)에 원전 4기(1000MW급 기준)가 내는 전력을 내뿜는다”고 설명했다. 단락발전기가 가동하면 수십미터 높이의 대형 시험설비가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다.

KERI는 세계단락시험협의회 정식회원으로, 여기서 시험인증을 통과하면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 실제 이날 대전력시험설비장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러시아 차단기가 대전력시험 인증을 받기 위해 와 있는 것이다. 인증비용은 2시간 사용에 약 2000만원이라고 한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의 고전압시험설비. 최대 420만V의 전압을 낼 수 있다. KERI 제공
현재 4000MVA급 시험설비만으론 인증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해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4000MVA급 설비가 증설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계 3번째 수준인 총 8000MVA급 대전력시험설비 용량은 갖추게 된다.

대전력시험설비장 옆에는 최대 420만V를 낼 수 있는 고전압시험설비장이 있다. 고전압설비는 전력기기가 낙뢰 등에 절연성능을 갖췄는지 평가한다.

◇미래형 전기도 준비..1000조분의 1초 레이저·전기선박 시험소 등

이 기관은 최근 1000조분의 1초인 ‘펨토’(femto)초 레이저를 개발, 미세 가공을 넘어선 초미세 가공의 정밀영역에도 도달했다. 1000조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에 레이저 빔을 쏘면 열이 나지 않아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인체 수술 등에 이용될 수 있다.

명성호 KERI 선임연구본부장은 “이달 말 기업체 기술이전을 통해 내년부터는 한국도 안과용 레이저를 자체 기술로 생산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국내 처음으로 풍력발전단지 출력제어시스템과 전기선박 육상시험소 구축 등 미래형 R&D에도 나서고 있다.

김종율 한국전기연구원(KERI) 책임연구원이 자체 개발한 풍력발전단지 출력제어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KERI 제공
풍력단지 제어시스템은 바람세기에 따라 제각각인 전력 생산량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통합관리 소프트웨어(SW)이다. 수요자인 전력거래소 요구에 따라 전력을 생산하고 남는 전력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보관한다. 연구팀은 제주도 풍력단지에 이 시스템의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만여㎡ 면적의 대형 육상시험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잠수함 등 전기선박의 성능과 안정성 등을 사전 시험한다. 대형공장과 비슷한 이 곳에는 육중한 기계설비들과 복잡한 전기기기 검증기, 대용량 배터리 등이 가득했다.

전기선박은 전기모터를 장착한 배로 현재 잠수함과 쇄빙선이 대표적이다. 추진력이 좋고 극한 자연환경에서 작동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이 시험소는 국산 기술로 만드는 3000톤급의 중형잠수함 ‘장보고-3’ 시험을 앞두고 있다.

임근희 KERI 팀장은 “앞으로 대부분의 선박이 전기추진 선박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육상시험소는 전기선박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용접 소리와 불꽃으로 가득한 국내 유일의 ‘원자력 공장’

KERI에서 차로 20분 이상 달려 도착한 총 442만여㎡ 면적의 두산중공업(034020) 창원공장. 두산중공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전 설비를 직접 설계해 생산 및 시공, 시운전까지 한다.

특히 원전의 1차계통(주기기)인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는 물론 2차계통인 터빈발전기도 제작한다. 이 회사는 현재 가동중인 23개 원전 중 14기에 원자로 압력용기를 공급했다.

실제 원자력공장에 들어가 보니 내부는 용접 소리 때문에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시끄러웠고 곳곳에서 용접 불꽃이 튀었다. 작업 현장은 경북 울진의 신한울 원전 2호기와 미국 원전 등에 공급할원자로 압력용기 등을 제작하느라 매우 분주해 보였다.

신한울 2호기의 원자로 용기(APR 1400·1400MW급)의 경우 두계 30cm의 탄소강으로 만든다. 직경 6m·높이 14m의 원통형으로 무게는 540톤 가량이다. 원자로 1기 제작에는 34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실제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 용기는 고온과 고압, 방사능 등에 견뎌내야 한다. 최충복 두산중공업 부장은 “제작공정은 주로 용접이 많다. 용접만 주야로 1달씩 할 때도 있다 ”며 “이후 방사선 투과(비파괴 검사)시험을 통해 용접부위를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세계 5위권의 원전 설비업체이지만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여파를 아직도 받고 있다고 했다. 주변의 중소 협력업체들 가운데 원전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마침 이날 한국수력원자력과 울진군이 ‘신한울 1~4호기 원전건설 사업’을 15년 만에 드디어 타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취재 기자를 인솔한 최 부장은 이 소식을 기쁘게 전했다.

두산중공업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공급한 APR1400형 원자로 압력용기. 두산중공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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