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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 시대…퇴직금, 지키면서 벌어야 한다

김인경 기자I 2022.09.05 05:25:00

[돈이 보이는 창]
다음달 고용부 승인 등 절차 마무리…실질적 시작
투자상품 전문성 갖춘 증권사 '호시탐탐' 눈길
美·호주 같은 연 8% 수익률 가능할까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지난 7월12일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관련 상품 심의와 퇴직연금 규약 반영, 기업과 근로자의 디폴트옵션 선택 등의 절차를 마무리한 뒤 본격적으로 디폴트옵션을 시작할 예정이다.

증권사들은 고용노동부의 관련 심의가 마무리된 10월께 실질적인 디폴트옵션이 시작될 것으로 판단하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잃지 않으면서도 불릴 수 있는’ 운용 전략을 통해 300조원에 육박하는 퇴직연금시장의 중추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저 적금에만 퇴직연금을 모아뒀던 직장인들도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다음달 드디어 디폴트옵션이 온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제도로 퇴직연금 가입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선택한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는 제도다.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지시를 하지 않거나 디폴트옵션으로 운용을 원할 경우 발동된다.

디폴트옵션은 장기투자에 적합한 펀드 상품과 원리금 보장상품 등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으로는 원리금 보장 상품을 포함해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펀드(SOC) 등이 담길 예정이다.

퇴직연금을 꼬박꼬박 쌓고 있는 근로자 입장에서 달라지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퇴직연금사업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승인받은 디폴트옵션 상품군에 대한 주요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시한다. 근로자는 제시받은 디폴트옵션 상품 중 하나의 상품을 고르게 된다. 이후에는 신규 가입 혹은 4주간 운용지시가 없으면 디폴트옵션 운용을 통지하고 이후 2주가 지나면 디폴트옵션이 적용된다.

두 번째 달라지는 점은 투자성 상품 운용 한도(위험자산 한도)가 100%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현행 퇴직연금 감독규정에는 주식 등과 같은 위험자산 한도를 70%까지만 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디폴트옵션 도입을 통해 적립금의 100%까지 주식에 넣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 첫 상품심의위원회를 거쳐 승인된 상품을 공시할 방침이다. 고용부와 금융당국은 디폴트옵션의 적립 금액, 운용 현황, 수익률 등을 홈페이지에 분기별로 1회 이상 공시한다. 가입자의 선택권 보장과 사업자 간의 경쟁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수익률이 고작 연 1~2%에 머무르며 ‘쥐꼬리 수익률’이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하던 퇴직연금도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증권업계, 디폴트옵션으로 퇴직연금에 성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8년 190조원이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이듬해 221조2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2020년 255조5000억원, 지난해 295조6000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3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단 2.00%에 불과하다.

이에 은행이나 보험보다 한 발 물러서 있던 증권업계는 디폴트옵션을 기회로 보고 있다. 작년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의 50.6%는 은행에 들어 있고 생명보험이 22.0%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증권사 21.3%, 손해보험사 4.8%, 근로복지공단이 1.3%로 집계됐다. 하지만 증권사의 수익률은 연 3.17%로 생명보험(1.93%)이나 손해보험(1.69%), 은행(1.59%)보다 2배 가량 높다. 이처럼 은행이나 보험권보다 투자상품에 전문성이 있는 만큼, ‘잃지 않으면서도 불릴 수 있는’ 기법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먼저 지난 5월 말 기준 연금자산 25조원을 보유 중인 미래에셋증권은 업무 인프라 디지털을 통해 고객 편의성을 최대한 증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미래에셋증권은 디폴트옵션에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검토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미 퇴직연금본부 내 디폴트옵션 TFT를 구성해 기획, 상품, 마케팅, 시스템, 프로세스 개발 등 각 분야에서 최적의 상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또 지점과 콜센터 등에 전담 인력도 확충할 계획이다. 한국금융지주 내 한국투자신탁운용과 협업해 변동성이 두드러진 시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는 신상품을 개발하고 펀드는 물론 상장지수펀드(ETF)나 리츠 등 다양한 상품을 운용해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겠다는 각오다.

2024년까지 금융투자업계 내 퇴직연금 적립금 톱3 진입을 노리는 KB증권은 사후 관리 차별화에 주목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알람기능이 중요하다고 판단, 고객관리 차원에서 퇴직연금 자산관리컨설팅센터를 통해 주기적으로 현금성 자산관리, 만기 안내 등 정보를 제공키로 했다. 또 잔고현황 및 수익률 현황을 매월 발송해서 상품 재투자 때 전문 상담 및 수익률 관련 컨설팅 상담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삼성증권 역시 고객들을 대상으로 디폴트옵션 펜션 포럼을 개최하며 준비에 나서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호주·미국처럼 8%대 수익률 나올 수 있을까

일찌감치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선진국에서는 연평균 6~8%의 안정적인 수익률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1992년부터 디폴트옵션 을 시행한 호주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호주의 퇴직연금 제도는 퇴직연기금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퇴직연기금은 오직 하나의 디폴트옵션만 설정할 수 있다. 퇴직연기금은 주로 라이프스타일펀드나 타깃데이트펀드(TDF)를 ‘마이슈퍼’ 상품으로 제시한다. 자산 구성부터 운용, 수익률, 투자리스크 수준 등을 하나의 플랫폼에 공시해 한눈에 볼 수 있다.기금 간 경쟁과 운용 효율성 강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호주의 퇴직연금 규모는 3조4000억호주달러이며 마이슈퍼 비중은 27.1%를 차지했다.

미국 401k 역시 10년 가입자에게 연 8%가 넘는 수익률을 제공하면서 ‘연금 백만장자’를 탄생시켜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 디폴트옵션의 설정 주체는 기업이다.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으로 기업에게 운용손실에 대한 ‘면책’을 부여하면서 확산의 기폭제를 마련했다.

다만 현재 국내에 도입되는 디폴트옵션은 해외 대부분의 국가들과 달리 장기투자에 적합한 펀드와 원리금보장형상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한아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적격디폴트투자상품(QDIA)에 원리금보장형을 포함시킨 일본의 경우 도입 이후 오히려 퇴직연금 수익률은 하락했다”며 “미국의 사례처럼 실적배당형 상품 위주의 디폴트옵션이 설정될 수 있는 제도적 유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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