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정부 약가인하, 물고기 숨만 쉬라고 수조 안 물 퍼내는 격"

천승현 기자I 2015.09.04 02:55:00

이경호 제약協 회장 "약가인하 정책으로 제약사 R&D 위축"
"글로벌 시장 진출 동력 상실 우려"
"국내 제약산업 선진국 수준 근접..리베이트 척결에 총력"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정부 약가인하 정책은 수조 속 물고기가 겨우 숨 쉴 수 있을 정도를 제외하고 물을 퍼내는 것과 같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물고기들은 활력있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65·사진)은 4일 방영되는 이데일리TV 이데일리초대석에 출연해 정부의 반복된 약가인하 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
이 회장은 정부의 약가 정책의 방향을 수조 속 물고기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1m 높이의 수조 속에 1m 길이의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물고기가 80㎝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고 20㎝ 높이의 물을 빼내면 물고기는 움직이지 않고 숨만 쉬라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제약사들이 복제약(제네릭) 등의 판매로 자금을 마련해야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비를 투입할 수 있는데, 정부가 연이어 의약품의 가격을 깎으면서 연구개발(R&D)이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지난 2012년 건강보험 의약품의 가격을 평균 14% 깎았다. 여기에 내년 3월 시행을 목표로 2000억원 규모의 약가인하를 추가로 추진 중이다. 제약협회와 한국다국적의약협회 모두 약가인하를 유예해달라고 복지부에 건의한 상태다.

실제로 국내에서 국산신약의 약가가 떨어지면서 해외에서 제 가격을 받지 못해 수출이 좌절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의 여파로 병·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감소하면서 제약사들도 적잖은 손실을 입었다.

그는 “정부가 안정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려는 목적은 동의한다”면서도 “제약사들이 R&D에 재투자하면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동력을 상실하지 않을 정도로 배려해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다”고 피력했다. 약가인하로 자칫 제약사들의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어 장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지난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국내제약사들은 공통적으로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최근에는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업체 제품으로 올리는 상품매출 비율이 치솟으면서 ‘국내제약사들이 다국적제약사의 도매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 회장은 “일본에서도 제약산업 육성 정책을 펼쳐서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다”면서 “국내 제약산업이 세계 1400조원 시장에서 커나갈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약가 정책은 산업진흥적 차원에서 배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의약품의 실제 거래가격을 토대로 약가를 조정하는 정책을 현행 매년 실시하는 것보다 2, 3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 회장은 건의했다 .

이 회장은 국내 시장에 만연돼 있는 불법 리베이트 척결에 적극 나설 것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 제약산업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불법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되면서 마치 전체 제약사들이 부도덕한 이미지로 얼룩지기도 했다”면서 “지금은 제약사들이 자체적으로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만큼 향후 더 이상 리베이트는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제약협회는 올해부터 자체적으로 회원사를 대상으로 리베이트 업체를 고발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등 리베이트 척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국내 제약산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국민들을 상대로 주요 제약사의 공장과 연구소를 둘러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약산업 오픈하우스를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한독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오픈하우스 행사에는 총 10여개 업체가 참여했고 수백명의 참가자들이 몰렸다.

이 회장은 “그동안 국산신약이 25개 개발됐고,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치료제와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배출하는 등 우리 제약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인정받았다”면서 “앞으로도 윤리경영과 리베이트 근절에 역점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제약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4년 보건사회부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보건복지부 약정국 국장, 사회복지정책실 실장, 차관을 역임했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원장, 인제대 총장을 지냈다. 2010년부터 제약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