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의 지구 한바퀴]⑧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푼타 아레나스`

김재은 기자I 2015.06.27 04:00:03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산티아고의 여유로움을 뒤로 하고 파타고니아(Patagonia)로 향한다. 우리는 산티아고에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행 란(LAN) 칠레 항공 오후 2시5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산티아고에서 푼타 아레나스까지는 4시간가량 걸린다. 지도에선 가까워 보이는데, 만만치 않은 거리다. 푼타 아레나스행 비행기는 워낙 작아 비즈니스석이 따로 없다.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시골 버스터미널같은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 닿았다. 내리는 사람도 수십명에 불과하다.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거세다. 바람에 밀려 몸이 움츠러들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 드디어 왔구나!’

깨끗한 푼타 아레나스 풍경. 사진=김재은 기자
택시를 찾는데, 택시가 없을 거란다. 승합차를 가르키며 저걸 타면 푼타 아레나스 시내에 내려줄 거라 한다. 우리는 마지막 손님으로 승합차에 올라탔다. 운전석 옆 자리다. 덕분에 시내로 가는 길에 남미 대륙의 끝, 푼타 아레나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감상했다.

뭐랄까. 북반구에 사는 우리로선 남반구,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에 있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파타고니아에서 우리가 여행할 곳들.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엘 칼라파테에서 모레노 빙하를 보고, 엘 찬텐에서 피츠로이를 감상한 뒤 엘 칼라파테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향할 계획이다. 사진=구글이미지.
푼타 아레나스는 칠레가 마젤란 해협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세운 전략도시로, 1914년 파나마 운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푼타 아레나스와 닿아있는 마젤란 해협은 포루투갈의 탐험가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1520년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 항해에서 발견했다.

푼타 아레나스는 우수아이아와 함께 ‘남미 대륙의 끝’을 두고 다투고 있는데, 사실상 남미 대륙의 끝은 푼타 아레나스이고, 우수아이아는 그 밑에 붙어 있는 큰 섬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푼타 아레나스는 세계 각국 남극 연구소의 전초기지로도 활용된다. 남극에 기지를 둔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국의 기지를 가기 위해 이 곳을 거치기 때문이다. 남극행 크루즈와 비행기도 푼타 아레나스를 경유한다.

푼타 아레나스 중심에 위치한 플라자호텔. 사진=김재은 기자
한 30분쯤 갔을까 승합차에서 각자 목적지 근처에 하나 둘씩 내린다. 우리는 플라자 호텔을 예약했는데, 거의 끝 순서다. 호텔 앞에 내리니 정말 오래돼 보이는 노란색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일단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내일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버스표를 예약하러 갔다.

푼타 아레나스는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신라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 인구 12만명의 소도시에 한국 라면가게가 있다니 신기하기 그지 없다. 지난 열흘간 산티아고에서 중국음식을 한 번 먹은 것 외엔 아시안 푸드를 구경조차 못했다.

도심에서 만난 퍼레이드 행렬. 사진=김재은 기자
내일 오후 2시 30분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버스를 예약하고는 신라면 가게를 찾아 정처없이 걸었다. 도심에서는 퍼레이드 행렬과 마주했다. 거리에 빨간 구두를 쭉 늘어뜨린 게 뭔가 의미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 모르겠다.

가도가도 라면가게는 나오지 않는다. 마주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 새라 사진에 담는데, 인물사진은 도통 찍을 수 없다. 바람이 너무 거세 머리가 완전히 헝클어지는 탓이다. 데이트중인 동네 청년에게 길을 물어 간신히 라면가게를 찾았는데, 이런! 문을 닫았다. 위도가 높아 해가 늦게 져서 그렇지, 9시가 다 됐으니 그럴 법도 하다.

푼타 아레나스 풍경. 사진=김재은 기자
내일 꼭 다시 오리라 맘 먹고, 저녁을 먹으러 발길을 돌렸다. 핫도그와 스테이크, 생맥주 2잔을 주문했다. 혹시나 했는데, 카드 결제기가 없단다. 다행히 산티아고에서 준비한 현금(페소)을 내고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이제야 어둠이 깔렸다. 편의점에서 마실 물, 요깃거리 등을 챙겨 호텔로 돌아왔다.

카드 결제기도 없는 푼타 아레나스에서의 저녁. 참 단촐하다. 사진=김재은 기자
우리가 묵은 호텔은 이름만 ‘Plaza’이고, 큼지막한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는 아주 오래된 곳이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3층까지 올라야 했다. 그래도 뭐 푼타 아레나스니깐 괜찮다. 내일은 신랑이 이번 여행에서 ‘모레노 빙하’만큼 가장 기대하는 ‘펭귄’을 보는 날. 푼타 아레나스에서 1박을 하는 것도 펭귄을 보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펭귄을 보고, 신라면을 먹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간다.

푼타 아레나스는 평화로움 그 자체다. 도심이 크지도 않지만, 매우 깨끗하고, 사람들도 상냥하다.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공원에서 마젤란 동상의 발을 만지며, 꼭 다시 올 수 있길 바라본다.(동상의 발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반질반질해졌다.)
어둠이 깔린 푼타 아레나스의 풍경. 사진=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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