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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없는 완구업계 '비상'…“자체 IP 개발 착수”

김경은 기자I 2023.06.12 05:35:00

[IP發 완구업계 지각변동]②저출산에 완구 수요 줄어…업계 적자 늪
IP 보유한 SAMG, 분기 흑자 전환 성공
인형·장난감 대신 의류·게임 매출 확보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국내 완구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키즈 콘텐츠 제작사들이 자체 개발한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앞세워 직접 완구 제작·유통에 뛰어들면서다. 콘텐츠 제작사 IP에 의존하던 완구업체들은 뒤늦게 자체 애니메이션 개발에 뛰어드는 등 살 길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5월 3일 서울의 한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시민들이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IP 부재’ 손오공·영실업, 실적 내리막길

11일 업계에 따르면 한때 완구시장 1~2위를 다투던 영실업과 손오공은 지난해 나란히 적자 전환했다. 영실업은 2021년 7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손오공도 같은 기간 11억원에서 마이너스 59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매출도 감소세다. 최근 5년간 영실업 매출은 2018년 1931억원, 2019년 1294억원, 2020년 1054억원, 2021년 948억원, 2022년 530억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손오공 매출은 2018년 991억원에서 2019년 734억원으로 감소한 뒤 700억~800억원대에 머물다 지난해 666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완구업체들의 실적 부진은 저출산 등 시장 침체는 물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완구업체들은 애니메이션 회사와 함께 캐릭터를 개발해 관련 제품을 출시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새 애니메이션 업체가 자체 제품 제작 및 유통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완구업체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손오공은 2021년 초이락컨텐츠컴퍼니와 결별하며 위기가 심화됐다.

손오공은 초이락의 애니메이션 ‘탑블레이드’, ‘헬로카봇’, ‘터닝메카드’ 등을 활용해 완구를 제작·유통해 왔으나 초이락이 독자 행보에 나서면서 먹거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에는 최대주주인 미국 완구업체 마텔이 6년 만에 지분을 매각하며 손오공을 떠났다.

영실업은 2009년 자체 IP인 ‘또봇’을 처음 선보이며 손오공을 제치고 업계 1위 자리에 올라섰지만 2015년 홍콩계 사모펀드(PEF) PAG에 인수되며 IP 사업 투자가 위축됐다. 2020년 교육업체 미래엔으로 주인이 바뀌었으나 이후 그렇다 할 IP 개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오로라월드·SAMG, 자체 IP로 승승장구

반면 자체 IP를 가진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실적은 고공행진이다. 에스에이엠지엔터테인먼트(SAMG엔터)는 2018년 매출 196억원에서 지난해 683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3억6000만원으로 적자전환했지만 올해 1분기 영업이익 2억5569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SAMG엔터는 핵심 IP인 ‘캐치! 티니핑’을 중심으로 ‘미니특공대’, ‘슈퍼다이노’, ‘룰루팝’ 등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기획상품(MD) 판매가 증가한 결과로 해석했다. SAMG는 자체 IP를 활용해 완구뿐 아니라 의류, 뷰티, 식음료, 게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봉제 인형 회사로 출발한 오로라월드는 자체 캐릭터를 개발하며 국내외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렸다. 오로라월드 매출은 2018년 1468억원에서 지난해 2316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30억원에서 183억원으로 늘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교수는 “과거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콘텐츠만 만들고 완구업체들이 완구를 만드는 구조였다”면서 “당시엔 지상파 채널에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려면 한 시즌마다 20억~30억원의 비용이 필요해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완구 제작·유통에 뛰어들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요즘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유튜브 등 애니메이션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화됐다”며 “완구를 판매하는 채널도 과거 마트 위주의 완구 매장에서 인터넷 쇼핑몰로 넓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완구 제작·유통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며 “반면 완구업체들은 자기 IP 없이 사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전통 완구업체들도 IP 개발 착수

업계에선 IP 확보가 필수 생존 전략이 됐다고 분석한다. 인형, 장난감 등 완구 수요가 줄더라도 의류, 식음료, 게임 등 키즈 IP를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 방안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국내 키즈산업 시장은 2012년 27조원에서 2025년 58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전통 완구업체들은 자체 IP를 개발해 실적 부진을 타개한다는 방침이다. 손오공은 연내 공개를 목표로 애니메이션 개발에 착수했다. 영실업은 컴투스 계열사인 위지윅스튜디오와 손을 잡고 애니메이션 IP 사업 강화에 나섰다.

김탁훈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완구업체들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콘텐츠 제작사를 위협할 수 있다”며 “전통 완구업체들이 가진 유통망이 탄탄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어 물량으로 밀어붙인다면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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