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날 개별 기업 비판에 업계 ‘한숨’
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서 CIO가 취임 첫날인 지난 27일 기자간담회에서 KT와 포스코, 금융지주 등 국민연금이 투자한 소유 분산기업의 인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올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지속하면서 내년에 후폭풍이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서 CIO가 이를 극복할 대응 방안이나 투자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삼간 채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를 공개적으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서 CIO의 간담회 내용은 지난 8일 열린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의 기자회견 발언과 일맥상통했다는 점에서도 이목을 끈다. 국민연금 이사장과 CIO는 공식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 정도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다.
하지만 서 CIO는 김 이사장의 발언에 동의를 표하며 개별 소유기업의 CEO 선출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 CIO는 이날 간담회에서 “KT나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들의 CEO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불공정한 경쟁이나 ‘셀프·황제 연임’ 우려가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이사장도 새 본부장에게 KT·금융지주 등 소유 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당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KT 이사회가 구현모 KT CEO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자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런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KT 지분 10.7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에 대해 한 운용사 관계자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했다”며 “CIO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된 자리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발언으로 해석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국민연금 CIO가 됐으면 시장 상황이 안 좋은 만큼 취임 첫날엔 수익률이나 자산배분과 관련된 견해를 밝혀야 했다”며 “그런데 취임 일성으로 지난번 김 이사장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읊고 있는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며 우려를 표했다.
◇“기업 겨냥보다 수익률 반등에 집중해야”
실제로 국민연금의 올해 운용수익률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지난 10월까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체 수익률은 -5.29%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월인 지난 9월 말 수익률 -7.06%보다는 1.77%포인트 개선된 수치다. 자산별 수익률(금액가중수익률 기준)은 △국내주식 -20.45% △해외주식 -4.84% △국내채권 -8.21% △해외채권 4.74% △대체투자 15.64%로 나타났다. 기금 규모는 지난 10월 말 기준 915조3360억원으로 전월대비 18조7360억원 늘었다.
앞서 안효준 전 CIO는 풍부한 유동성 시대에 힘입어 3년 동안 운용수익률 10%대의 높은 성과 기록하고 지난 10월 퇴임했다. 안 전 CIO는 지난 2018년 10월 취임한 이후 2020년 10월까지 2년 임기를 채운 뒤 1년씩 두 번 연임하며 최장수 CIO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서 CIO가 맞이하는 내년 시장은 올해와 비슷하게 경기 침체 우려와 불확실성이 커 자산운용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업계에서 서 CIO가 소유분산 기업의 CEO 인사를 직접 거론하기보다 수익률과 투자 성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고질적인 인력 이탈 문제 등도 서 CIO가 해결해야할 숙제다.
다른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물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CIO가 내부 절차를 건너뛰고 민간 기업 CEO 인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공식적으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 되는 일인데, 정부의 입맛대로 소유분산 기업 CEO 인사에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을까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