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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픈 세상 닮다…농담 같은 조각, 냉소 같은 그림

오현주 기자I 2021.03.10 03:30:01

△최하늘의 조각·그림 '아빠'
산업재료를 고전적 조각재료로 변신시킨 뒤
사진 촬영으로 '평면'에 가두는 장치를 보태
근엄한 남성적 조각행위에 대한 퀴어적 유머

최하늘 ‘아빠’(2020). 조각한 작품을 세우고 사진촬영해 평면화했다. 조각의 재료는 스펀지·스티로폼. 고전적 조각재료인 나무처럼 보이게 변신시켜 놨다. C-프린트, 200×110㎝(사진=원앤제이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두툼하게 잘라낸 나무토막을 겹쳐 만든 형체는 영락없이 ‘사람’이다. 도려내고 다듬어 완성한 정 끝의 묘미가 보인다. 팔도 머리도 없는 몸뚱이에 상처까지 잔뜩 입힌 형상은 분명 ‘한 인물의 희생’을 의도한 것일 테다.

조각가 최하늘(30)이 빚은 ‘아빠’(2020)라는 작품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작가가 의도한 중요한 장치가 있다. 조각품을 납작하게 눌러버린 건데. 완성한 입체를 사진촬영해 평면에 ‘가뒀’다. 굳이 왜? “희생한 육신은 액자에 프린트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란다.

사실 작가는 이보다 더한 변주도 했다. 가구나 인테리어 속에 작품을 밀어넣거나, 가볍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산업재료로 보는 이의 눈을 속인다든가. 저 묵직한 ‘아빠’ 상도 무늬만 나무일 뿐 스펀지·스티로폼을 그럴듯하게 고전적 조각재료로 변신시켜 놓은 것이다. 여느 작가라면 질색했을, 차마 대놓고는 못할 이 작업은 남성성을 물씬 풍겨내는 근엄한 조각행위에 대한 작가의 ‘퀴어적’ 유머고 농담이고, 또 냉소란다. 계획은 성공한 듯보인다. 적나라한 희·비극이 오가는 ‘조각·그림’을 완성했다.

4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원앤제이갤러리서 박경률(42·회화)·홍승혜(62·영상설치)와 여는 3인전 ‘웃, 음-; 이것은 비극일 필요가 없다’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때론 흔한 그림놀이(박경률)로, 때론 치밀한 디지털기호(홍승혜)로 ‘묵직한 희극성’을 풀어낸, 이들 세 작가의 신작 20여점을 내놨다. 작가들은 각자의 작품들을 전통과 현대, 매체완전성과 매체불안정성 사이에 걸쳐두고 끊임없이 농담을 건다. 웃을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믿음이 깨진 예술’에 대안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박경률 ‘그림 3’(2020). 회화 탐구의 무거움을 유희적인 놀이로 가볍게 뒤집어놨다. 캔버스에 오일, 280×230㎝(사진=원앤제이갤러리).
홍승혜 ‘디지털 카페트’(2021). 디지털 기호를 가져다가 원초적인 소통이 가능할 언어의 이미지로 바꿔놓았다. 플로어에 접착성 비닐 시트, 가변 크기(사진=원앤제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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