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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느덧 반백 년을 바라본다. ‘붓을 뽑았으면 점이라도 찍겠다’며 덤벼들었던 세월. 그 지난한 시간만큼 이루고 해냈다. 한국미술계의 허리, 바로 중추로서의 역할 말이다.
정확히 47년 전이다. 1975년 홍익대 미술학부로 패기란 깃발 하나씩 들고 모인 학생들. 그해 입학한 새내기 ‘75학번’이었다. 다들 스무살 남짓, 하지만 어리고 여리다고 대충 볼 면면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섰던 사연, 과정이야 제각각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미술천재’란 소리 한 번씩은 들었을 이들이 아닌가. 동양화·서양화·조각 등 순수미술 수업을 같이 들으며 이후 4년을 함께했던 이들 예비작가들은 유독 돈독했단다. 그래도 어쩌겠나. 졸업을 기점으로 섭섭하고 애틋한 마음만 잔뜩 품은 채 뿔뿔이 흩어져 갈 수밖에.
하지만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이들이 휘어잡은 동네가 말이다. 어차피 미술계였으니.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보폭을 넓히던 어느 날 이런 말이 들려왔단다. “우리 한번 뭉쳐보자!” 누가 말을 꺼냈는지는 희미하나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는 선명하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75동기전’, 화끈하게 줄여 ‘홍대 75전’이 결성됐으니까. 그렇게 1985년 ‘홍대 75전’ 첫 전시가 열렸다. 75∼80명 동기 중 30여명이 깃발 대신 이번엔 작품 하나씩 안고 모여들었다.
21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에는 여느 전시장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20여명의 중·장년작가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거다. 맞다. 풍문으로만 들어왔던 그 ‘홍대 75전’이 다시 열린 거다. 회화·조각·설치작품 등 29점을 걸고 세운 전시장에는 예전 그 이름, 그 얼굴, 그 작품이 모였다. 횟수로는 5번째고, 햇수로는 4년 만이다. 첫 전시 이후 1995년 제2회를, 1996년 제3회를, 2018년 제4회 ‘홍대 75전’을 열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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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홍대 75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27명. 강기욱·공미숙·김경희·김동백·김승연·김정수·김정순·김준권·박은서·백낙선·성순희·손기환·심인혜·왕인희·이경혜·이신명·이정규·이희중·정해숙·차대영·황찬수·황혜련 등 22명이 회화작품을, 박헌열·이상권·정대현·최기봉·한진섭 등 5명이 조각·설치작품을 내놨다.
‘진달래 그림’으로 대중에게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정수 작가가 100호와 60호 규모 ‘진달래 축복’(2022) 2점을, ‘홍대 75전’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정순 작가는 ‘꽃대궐 다시 꽃시절’(2021)을 걸었다. 한국조각가협회 명예이사장인 한진섭 작가는 ‘한마음’(2020)과 ‘행복하여라’(2021) 2점을 세웠다. 지난해 타계한 이정규·이희중 작가의 ‘계곡의 속삭임’(2011)과 ‘진달래꽃’(2001)은 절절한 초대작이다. 이들 외에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작품 대신 ‘스스로에 만족하는 삶을 위하여’란 글로 동기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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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홍대 75전’ 때 서른 남짓이던 이들은 이제 일흔을 바라본단다. 바래고 흐려진 옛 기억을 더듬어준 건 한 작가다. “참 특별한 학번이었다”고 운을 뗐다. “고집 세고 개성이 남달랐지만 ‘함께’란 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유사한, 홍대 미대 출신 다른 모임이 있지 않을까. 한 작가는 고개부터 내젓는다. “원체 작가란 사람들은 한데 뭉쳐 뭔가를 도모하기가 어려운데, 그 어려운 일을 희한하게도 75학번만 마다하지 않았다”며 웃는다. “1955, 1956년생들이니 하나둘씩 퇴직하고 은퇴한 시점이 아닌가. 이번 전시는 그 의미까지 각별하다.”
그 동기들 중 어느 누구 사연 없는 이가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붓과 망치로 시간을 다져왔을 터다. 그 긴 서사는 전시작들이 대신 말해준다. 산과 물, 길과 담, 나무와 꽃 등으로 관조하듯 더듬어낸 세월의 두께가 두툼하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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