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기고]차기 총수 지정 시점, 공정한가

이준기 기자I 2022.03.11 05:30:00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 올해 2월에만 고(故) 구자홍 LS 초대회장과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두 명의 그룹 총수가 별세했다. 두 그룹은 이르면 5월 이전에 새로운 동일인을 정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총수 지정 시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
점은 법적 근거가 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21조 4항에 근거하면 매년 5월1일까지다. 부득이한 경우 같은 달 15일까지 늦출 수 있다. 매년 대기업집단을 지정할 때 공정위는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를 의미하는 동일인, 즉 총수가 누구인지도 결정한다.

지금의 대기업집단 공시 규정은 총수가 생존해 있을 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동일인의 사망 시점에 따라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 새로운 총수가 지정될 때까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 정도 공백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 구본무 LG 회장이 작고한 시점은 2018년 5월 20일이다. 구본무 회장은 생존 당시 때부터 그룹 후계자를 지금의 구광모 회장으로 미리 낙점해 놓았다. 그런데 실제 공정위에서 구광모 회장을 LG그룹 동일인으로 공식 지정한 시점은 1년여가 흐른 2019년 5월이었다. 고 구본무 회장은 이미 별세했지만, 그룹 총수 지위는 1년 정도 유지된 셈이다. 법률적으로 보면 문제 될 건 없지만, 실질적으로 총수 공백 상황이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반면 4월에 그룹 총수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새로운 동일인을 누구로 할 것인지를 한 달도 안 돼 공정위에 급하게 보고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경영에 참여하는 자녀가 복수 이상이고 차기 후계자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은 그룹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진그룹이 유사한 사례다. 고 조양호 한진 회장은 2019년 4월 8일 별세했다. 이때만 해도 한진그룹은 차기 후계자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장례 절차가 끝나자마자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차기 총수를 누구로 결정할 것인지가 당시 한진가(家)에 남겨진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공정위에 보고할 차기 총수부터 급하게 정하다 보니 첫 단추부터 힘겹게 끼워졌다.

만약 고 조양호 회장의 별세 시점이 실제보다 한 달 뒤였으면 어땠을까. 최소 공정위로부터 총수를 빨리 지정해 보고하라고 재촉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다음 총수 지정 때까지 1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가족 간 합의점을 도출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그룹 사례만 살펴보더라도 현행 대기업 집단 공시 규정대로 하면 현직 그룹 총수가 사망했을 때 다소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차기 그룹 후계자를 언제 결정할 것인가는 각 그룹의 내부 사정에 달렸다. 현직 총수가 사망한 이후 어떤 곳은 다음 공시 때까지 1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는 반면, 어떤 곳은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 차기 총수를 급히 지정해야 하는 법 규정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한 번쯤 곱씹어볼 대목이다. 현직 그룹 총수가 갑작스럽게 부재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대기업 집단 동일인 지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세부 규정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