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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리포트] 러시아 한식문화의 고민

김민구 기자I 2015.08.24 04:02:01
[모스크바(러시아)=오선근 해외통신원] 광활한 영토에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음식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러시아 식문화의 자부심이라는 호밀이 주성분인 시큼한 맛의 흑빵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샤슐릭’(숯불 고기구이), 우크라니아 음식인 ‘보르쉬’(수프) 등이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추운 날씨 때문에 전통가옥에 주방을 따로 두지 않고 장작을 태우는 난방용 벽난로를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이러다 보니 불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음식이 단순할 수 밖에 없다고 식품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러시아의 경제발전으로 음식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욕구도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전통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음식이 러시아 식탁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 음식문화는 수백년전에 러시아에 진출했으며 중국음식은 이미 옛 소련 시절을 거쳐 러시아에 뿌리를 내렸다. 일본식당 역시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이후 러시아 대도시에서 쉽게 눈에 띄일 정도로 많아졌다. 이와 함께 베트남 음식도 러시아인들의 입맛에 맞는 퓨전식 카페가 속속 등장했다.

한식문화의 러시아 진출은 지난 1990년대 옛 소련의 붕괴 이후 한국인들이 왕래하기 시작한 모스크바와 러시아 극동 도시에 한국 식당들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초기 러시아에 진출해 문을 연 한국식당의 주 고객은 러시아에 왕래하거나 거주하는 한국인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인 못지않게 벽안의 러시아인들이 한국 음식을 찾는 등 현지화에 성공했다.

러시아에서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는 ‘카레이스키(옛 소련 거주 고려인) 샐러드’를 꼽을 수 있다. 고려인식(式) 김치인 카레이스키 샐러드는 달달하면서 시끔한 맛이 나 가장 대중적인 한국음식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이 음식이 러시아에만 있고 한국에는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러시아인들도 많다. 그만큼 러시아인과 고려인의 입맛에 맞는 퓨전식 한국음식이라는 얘기다.

음식문화의 세계화를 놓고 전통을 고집해야 할 지 아니면 퓨전식으로 승부해야 할 지는 하루 이틀의 고민이 아니다. 모스크바만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일식과 베트남식의 퓨전식 레스토랑들과 카페들이 하루가 다르게 곳곳에 생겨나 러시아에서의 인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인들은 이들 퓨전식 레스토랑이나 카페보다는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거나 일본인 요리사가 있는 일본식당을, 또는 베트남인 주인이나 요리사가 있는 베트남 식당을 더 찾는 모습이다. 한식당 역시 요리사나 주방담당자가 한국인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에서 러시아인들의 외국 음식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문화의 세계화에 있어 사람 입맛이 다양하기에 퓨전은 필수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을 잃은 퓨전은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카레이스키 샐러드처럼 현지에서는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없는 음식이 나오기 마련이다.

결국 러시아에서는 전통과 퓨전을 합리적으로 융합하는 방법을 찾는 것만이 한국 음식문화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한류 붐을 조성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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