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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R’의 공포…전자·가전 쌓이는 재고

김응열 기자I 2022.11.12 06:00:00

삼성전자 재고 57조3천억 육박…SK하이닉스 122% 급증
LG전자도 11조원…수요 위축에 늘어나는 재고자산 부담
경기 반등 불투명…기업들, 연말 쇼핑시즌이 재고 관건
“소비 위축 지속시 가격 하락 불가피, 실적 부담 가중”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국내 전자·가전기업들의 재고가 쌓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제품이 좀처럼 팔리지 않고 있다. 단기간 내 수요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제품가격 하락 등으로 회계상 회사 실적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2)에 반도체 웨이퍼가 전시돼 있다. (사진=뉴스1)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의 올해 3분기말 재고자산은 57조319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말 37조8017억원 대비 51.6% 증가했다. 상반기말보다도 10% 늘었다. 상반기 재고자산은 52조922억원이었다. 상반기말 역시 전년 동기 대비 55% 늘었는데, 3분기에도 재고자산이 꾸준히 쌓였다. 반도체와 가전제품 모두 재고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000660)의 재고자산 증가 폭은 더 컸다. 3분기 말 재고자산 규모는 14조665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22% 급증했다. 상반기말과 비교해도 23% 늘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까지는 재고자산 규모가 10조원을 넘은 적이 없지만 올해에는 1분기말부터 10조원을 초과했고, 3분기말에는 15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국내 대표적 가전회사인 LG전자(066570)도 상황이 좋지 않다. LG전자의 재고자산 규모는 11조20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LG전자 역시 지난해 재고자산이 10조원을 밑돌았지만 올해 1분기말 10조2143억원을 기록했고 2분기말 들어 줄었다가 3분기에 다시 늘었다.

LG디스플레이(034220)도 재고가 예년에 크게 늘었다. 3분기말 LG디스플레이의 재고자산은 4조5170억원 규모로, 전년 동기 3조5803억원 대비 26% 상승했다. 상반기말 4조7224억원과 비교하면 4.3% 줄었지만, 여전히 4조원대 이상으로 재고부담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예년 LG디스플레이의 재고자산 규모는 2조원대였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 가전매장에 TV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기(009150)의 3분기말 재고자산 규모는 1조9319억원이다. 삼성전기 역시 지난해 3분기말 기준 1조5061억원보다 28% 늘었다. 보통 1조원대 초반을 기록하던 삼성전기의 재고자산은 올해 들어 2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 전자·가전업체의 재고자산 증가는 수요 위축에 따른 영향이 짙다. 이들 기업의 재고자산회전율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재고자산회전율이란 매출액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수치다. 회전율이 낮을수록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가 늦다는 것이다. 물건이 안 팔린다는 뜻이다.

각 사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상반기말 재고자산회전율은 4회다. 지난해 1분기말 5.3회에서 2분기말 4.8회, 3분기말 4.6회, 4분기 4.5회, 올해 1분기말 4.2회로 꾸준히 떨어졌다. 분기가 지날수록 제품이 제때 팔리지 않는 정도가 심해졌다.

다른 기업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회전율은 지난해 상반기말 3.8회에서 올해 동기 2.7회로 꾸준히 하락했다. 같은 기간 LG전자는 6.5회에서 6.1회로, 삼성전기는 5.4회에서 3.4회로 낮아졌다. 영업손실을 보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상반기말 9.1회에서 올해 동기 5.4회로 추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특수가 끝나고 고금리·고물가 등으로 인한 경기둔화가 겹치면서 TV, PC, IT 등 전자·가전 제품 수요가 줄고 있다. 이러한 추이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기업들의 재고부담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는 “코로나19 팬데믹 특수가 끝나고 경기둔화가 겹치면서 수요가 감소하고 업황 위축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가전 전반의 수요감소로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고 봤다.

재고가 쌓이면 당장 4분기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제품 판매가격이 전과 달라지면 이를 바탕으로 재고자산의 가치를 산정하는데, 수요 위축으로 판매가격 하락 압박이 커지면서 재고자산평가손실이 커질 수 있다. 이는 매출원가에 반영돼 기업 매출총이익과 영업이익의 감소폭을 키울 수 있다.

아울러 재고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할 경우 제품의 가격 추가 하락 압력도 강해진다. 이 역시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전자·가전기업의 관건은 재고 줄이기”라며 “연말 성수기를 이용해 재고를 적정수준으로 감소시키지 못하면 실적 반등의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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