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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도 개미도 '해외투자'…넘치는 환전 수요[위기의 원화]⑤

최정희 기자I 2022.09.20 04:30:00

[위기의 원화]⑤국민연금 맞먹는 서학개미
국민연금 100% '환오픈'…연간 300억달러 넘게 환전
2020년부터 들썩거린 서학개미, 320억달러 해외로
주가 급락에 올해 해외 투자 줄었어도 10년전보다 3배
국내 기업, 해외 지분 투자 등 직접 투자도 사상 최대
소득수지 개선되면 엔화 절상됐던 과거 '日'처럼 될까

(사진=AFP)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보며 금융위기 수준으로 올라섰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환율 급등세를 보고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환율 급등을 만드는 구조적 요인, 전망, 해결방안 등을 각 요인별로 분석한다. -편집자 주-

‘고환율이 곧 위기’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지만 위기 때와는 구조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 해외 투자 확대다. ‘큰 손’인 국민연금이 환오픈을 한 채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고 개인투자자들도 2020년 코로나19 이후 해외 투자를 대폭 늘렸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환전을 통해 원화를 달러화로 바꿔 해외 투자에 나선다는 점이다. 환전 수요 급증은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동시에 지금의 환율을 과거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환오픈’으로 전략 바꾼 국민연금, 환율 더 끌어올리나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잔액은 올 4월말 3300억달러인데 2025년까지 약 1000억달러의 신규 해외 투자가 집행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이 2018년부터 100% 환오픈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300억달러 이상의 신규 환전 수요가 발생한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해외 자산을 판 후 이를 원칙적으로 국고에 납부하도록 돼 있다. 기존 해외 자산을 판 매도 대금으로 다른 해외 자산을 매입할 경우 환전 수요가 발생하지 않지만 국민연금이 보유할 수 있는 예치금은 ‘단기외화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월평균 잔액 6억 달러에 불과하다. 즉, 재투자시에도 환전 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그로 인해 국민연금의 연간 환전 수요는 300억달러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은 일평균 1억~2억달러 가량 환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이 일평균 현물환 거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밖에 안 된다지만 국민연금이라는 큰 손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다른 투자자의 외환매매, 심리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과거 미국이 자국 통화 약세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달러 매수(환오픈 전략)는 외환당국의 개입 수요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며 “지금 와서는 환율이 높고 시중에 달러가 없다고 해서 (6월말) 선물환 매도도 했지만 이는 환오픈 전략과는 상반된 조치”라고 말했다.

결제액 기준, 2022년은 9월 16일까지 (출처: 한국예탁결제원)


◇ 서학개미, 해외 주식 떨어져도 ‘콜’ 외친다


‘서학개미’도 환전 수요의 거물이 됐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 등의 해외 주식·채권 순투자액(결제액 기준)은 2020년 320억달러로 전년(156억달러)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코로나19 위기가 터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는데 ‘V자’로 회복되면서 해외 주식 투자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작년에도 276억달러 순투자됐고 올 들어 9월 16일까진 168억달러가 순투자됐다. 연초 이후 미국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가 17%나 하락하면서 해외 주식 투자 수요가 소폭 줄어들긴 했으나 올해 순투자액은 10년 전(57억달러) 대비 세 배 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시 환헤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도 환전 수요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해외 주식이 급락한다고 해도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투자를 줄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주식의 경우 주가가 크게 급락했음에도 달러화가 연초 이후 15% 가량 오른 점을 고려하면 지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달러화 급등이 방어했다. 그러다보니 개인, 법인, 연기금 등 거주자의 대외금융자산은 6월말 2조123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3월말(2조1893억달러)보다 소폭 감소했으나 이는 대부분 주가 하락 등에 따른 요인일 뿐 투자액은 외려 257억달러 순증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기업 지분 투자 등 직접 투자도 증가 추세다. 작년엔 직접투자액이 608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7월까지도 430억달러가 투자됐다. 벌어들인 달러화를 원화로 환전하려는 수요보다는 바로 해외에 투자하거나 원화를 달러화 등으로 바꾸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8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선 해외투자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해외 직접투자는 해마다 큰 폭의 증가세를 거듭해왔고 미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에 따라 구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일본은 해외투자 확대로 인한 소득수지 증가가 엔화 절상,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졌는데 거주자 해외투자가 더 커지면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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