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천막을 찾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 반복해서 단독 처리를 계속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민주당을 위해 옳았나”라고 말했다. “정치라는 것이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어서 국민들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하고, 어느 한쪽이 잘못했다고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듯했지만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비판하는 데 더 무게를 둔 것으로 읽히는 말들이다.
김 의장은 올해 5월 국회의장에 선출되기 전까지 민주당 소속으로 의원 선거에서 내리 5선을 했다. 의장 후보를 뽑는 당내 투표에서는 “제 몸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며 골수 민주당원을 자처했다. 당내 지지를 호소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불도저식 국정 운영을 막아내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일도 있다.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떠났지만 민주당에 대해선 강한 애착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김 의장이 당 대표의 단식 투쟁 장소에서 법안 강행 처리에 쓴소리를 한 것이다.
민주당은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추가 소요되는 양곡관리법(4월)과 직역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간호법(5월)을 강행 처리했지만 두 법안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막혔다. 정부·여당이 결사 반대한 것이어서 거부권 행사가 예견된 상태였다.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압도적 의석수의 민주당이 “할 테면 하라”식으로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국을 급랭시켰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김 의장의 발언은 이런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을 되풀이 말자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김 의장의 발언에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고, 당내에서는 김 의장을 향해 거친 비판이 마구 쏟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김 의장의 속내와 발언의 의미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산적한 데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등으로 지지도가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입법 독주가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1일 시작된 21대 마지막 정기 국회의 가장 큰 소임은 경제와 민생 챙기기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대화와 협치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