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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취득하는 행위 자체는 합헌이고, 다만 사후 통지는 필요하다”고 판결한 뒤 제도적인 보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럽처럼 개인의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이 가져갈 경우 사후 통지는 물론이고 사전 통제 장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는 헌재가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음에도 아직 후속 입법을 마무리하진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통신사는 주고, 포털은 안주고 혼란
헌법재판소는 ①통신사가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통신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ID), 가입일 등을 내 줄 수 있는 조항은 합헌이라고 판단했고 ②다만, 통신자료 제출에 대한 사후통지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헌법불합치)고 판단했다.
이 문제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2020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 대상이 아닌 언론인과 사회단체 활동가 등의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조회해 민간인 사찰 논란이 발생한 게 계기가 됐다.
통신자료는 통신의 내용은 아니다. 통신자료는 ‘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 및 해지일 등 통신이용자의 인적사항’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행 법(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선 전기통신사업자(통신사 또는 포털 등)는 수사관서의 장 등이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통신자료에 대해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면 영장 없이도 ‘따를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런 애매한 조항은 통신사와 인터넷 기업의 다른 대처를 낳았다. 통신사들은 위 조문을 근거로 수사기관 등에서 협조 공문이 오면 통신자료를 내주고 있고, 네이버나 카카오는 내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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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달라…국내 발의법안들 대부분 사전 통지 조항 빠져
(사)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에 따르면 영국 정부와 의회는 관련 법을 개정해 정보·수사기관 등이 커뮤니케이션 데이터 제공을 요청하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 또는 명령을 갖추도록’ 했다.
이러한 절차를 요구받는 커뮤니케이션 데이터에는 우리나라의 ‘통신자료’의 개념과 유사한 ‘가입자 정보(subscriber Information 또는 account information)’는 물론 ‘통신사실확인자료’와 유사한 ‘트래픽 데이터(Traffic Data)’ 및 ‘서비스이용정보(Service Use Information)’가 함께 포함돼 통일적으로 규율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검토 중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들은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안을 빼면 법원의 허가나 사전 통제장치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다.
(사)정보인권연구소 등은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제공된 뒤 통지에 대한 규정만 도입된다면, 과도한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통제 효과가 미미할뿐더러, 범죄와 무관하게 통지를 받게 될 국민의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헌법재판소는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수사에 해당해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대법원과 국가인권위 등의 판단은 다르다”면서 “사후 통지만으론 통신자료 제공의 오남용에 대한 법적 책임소재가 모호하다. 사전 통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통신자료를 제공한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바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 등의 요청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지적하는 등 현행 법에선 자신의 통신자료가 제공된 사실을 사후에 통지받은 국민이 피해에 대한 권리를 구제받으려 해도 정보·수사기관에 대해서나 전기통신사업자에게나 법적 책임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