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여성은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장애 여성은 집과 시설에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집과 시설을 박차고 나가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 그것 자체가 투쟁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장애여성공감이다.
이 단체는 지난 1998년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지난 15일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에서 김효진(활동명 여름·사진) 사무국장을 만나 장애여성공감의 주요한 두 축인 ’장애 여성 성폭력‘과 ’탈시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성폭력에 취약한 장애 여성...‘친밀한 통제’ 만연
장애 여성은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김 사무국장은 "흔히 남성이 본능적 욕구를 참지 못하고 성 관련 범죄를 저지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계산이 개입된 경우가 많다"며 "치밀한 계산 끝에 '건드리기 쉬운 사람'을 표적으로 삼게 되고 그것이 장애 여성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발달장애 여성들은 성폭력 문제에 취약하다. 김 사무국장은 ”많은 가해자들이 의도를 숨기고 장애 여성들에게 접근한다"며 "발달장애 여성들은 그 의도를 읽어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발달장애의 특수성과 사회관계망 결핍이 중첩되어 있다. 발달장애 여성의 경우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다양한 사회관계로부터 단절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김 사무국장은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 관계에서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관계맺기를 연습한다“면서도 ”장애 여성의 경우는 다양한 관계 역동을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애여성을 향한 일상 생활 속의 ‘친밀한 통제’ 또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문제다.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는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더라도 ‘친밀한 통제’는 장애여성의 삶을 옭아맨다.
김 사무국장은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친숙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 혹은 보호의 명목으로 통제와 억압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며, 가시화되기 어렵다.
삐걱거리는 성폭력 상담...사회 구조 잘 짚어야
하지만 장애 여성의 성폭력 문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여성공감 등에서 제공하는 인권상담은 생각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며 "장애 여성들이 폭력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차별과 폭력을 일상에서 숨 쉬는것처럼 경험하는 장애 여성들은 폭력을 겪어도 폭력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확보하지 못한 장애 여성들은 ‘유일한 보호자’가 차별과 폭력을 가했을 경우 피해 상황을 토로하기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어렵사리 폭력 상황을 인지하더라도 난관에 봉착한다.
우선 쉼터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입소할 수 있는 인원이 매우 적다.
서울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이주여성 포함 피해자 보호시설은 총 35개이고 입소 정원은 405명에 불과하다.
김 사무국장은 ”쉼터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쉼터가 비장애인 위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2017년 서울시에서 발간한 ‘폭력피해여성 지원기관의 장애여성 지원 실태 및 지원 방안’에 따르면 장애인 내담자 상담, 지원을 위한 지침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는 상담소의 45.5%, 보호시설의 9.5%였다. 이용 가능한 주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는 기관은 응답 상담소의 40.9%, 보호시설의 81.0%로 나타났다.
따라서 비장애인 위주로 운영되는 쉼터에서 장애 여성을 위한 상담과 치료 회복은 쉽지 않다.
쉼터 내부의 치료회복 프로그램 또한 완벽한 대책이 될 수 없다.
김 사무국장은 “치료회복 프로그램은 1차적으로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치료회복 프로그램의 목적은 일상생활로의 ‘복귀’에 방점이 찍혀있다. 사실 바뀌어야 하는 건 사회지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코호트 격리' 논란...탈시설을 위한 고군분투
장애여성공감은 이와 함께 장애 여성의 인권 강화를 위해 ‘탈시설’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코호트 격리’(시설 전체를 봉쇄하는 조치)가 논란이 되면서 시설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김 사무국장은 “코호트 격리라는 명목하에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도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분리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코호트 격리를 한다고 하면서 장애인들은 시설 밖에 못나가도록 통제했지만 자원활동가와 시설 종사자들은 시설 안팎을 드나들었다”며 “같은 코호트로 묶여있는데 장애인만 통제했다”고 지적했다.
시설의 문제는 비단 ‘코호트 격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 사무국장은 시설에서의 가장 큰 문제로 “'존중하는 관계맺기'가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주체성을 명백히 침해한다는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거주 선택지로 ‘시설’이 주어지지 않는다“라며 ”유독 장애인에게만 시설에 살아야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장애인이 시설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장애인들의 몸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욕망에 가깝다는 게 김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활동지원서비스와 시설에서의 서비스 또한 질적인 차이가 크다.
‘활동지원서비스’는 해당 장애인의 자택에서 일대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지만, 시설에서의 서비스는 한 명의 장애인에 여러 명의 종사자가 지원하는 다대일 서비스의 구조다.
김 사무국장은 “‘활동지원서비스’는 일대일 맞춤형인만큼 장애인이 일상의 주도권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지만 시설에서의 서비스는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화학적 구속 또한 문제가 된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에게 과도한 정신과 약물을 투여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장애인들이 ‘약을 먹고 건강이 악화됐다’며 약물 중단을 요구해도 묵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직 체계적인 통계 자료나 설문조사가 부재한 실정이지만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과도한 양의 약물이 투여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사실상 장애인을 위한 조치라기보다는 시설의 편의를 위한 통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탈시설’을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잘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뿐 아니라 영구임대주택 등 취약계층의 주거지는 게토화(빈민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하나의 지역사회에 살지만 담을 쌓고 차별하는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구임대주택 주민의 경우도 지역사회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분리되어 ‘섬’처럼 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동료 시민’으로 거듭나야...“질문을 많이 던질 것”
김 사무국장은 “장애가 있는 동료 시민이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만나기 어려운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는 장애인들이 보통 집이나 시설에서 격리 아닌 격리가 되어있다보니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관계를 맺을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가 된다면 다양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양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해야 종국에는 장애인 차별을 없앨 수 있다는 것.
김 사무국장은 ”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장애인 대응 매뉴얼’을 요구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러한 매뉴얼 요청이 더욱 상처다“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 대응 매뉴얼‘을 요청하는 행태는 장애인을 동료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라고 비판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매뉴얼은 필요하지 않다. 관계 형성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기술이지, 특정 지침을 공부해서 습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사무국장은 “장애 여성에게 질문을 많이 할 것”을 당부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 여성에 대한 질문은 ’지원 대상으로 적합한지‘의 영역에만 국한되었다”며 “이는 국가에서 장애 여성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질문은 단순히 답변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틀을 깨고, 문제를 지적하고, 시야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안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