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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바이오산업이 캐즘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오희나 기자I 2018.08.20 03:00:00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경영학 용어 중에 캐즘(chasm)이라는 게 있다.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단계가 되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심각한 정체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많은 산업의 발전 과정을 보면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포탈산업도 그 경우에 해당한다. 선진국에서 인터넷 보급이 활발히 이뤄질 때까지 우리는 이용자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해당 부문이 산업으로 자리잡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눈에 띄는 수익 모델이 없었던 게 이유였다. 1998년에 상황이 바뀌었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후 정부가 인터넷을 새로운 산업으로 꼽고 육성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터넷을 비롯한 아이티(IT)산업이 붐이 일어난 것도 힘이 됐다.

처음 눈길을 끈 건 전자상거래와 포털업체 였다. 2000년 주식시장이 시작할 때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시가총액이 5조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는데 그해 말 시가총액이 1800억대로 줄었다. 1년 사이에 주가가 96%나 하락한 건데 기업이 망하지 않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하락률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포털 업계는 네이버와 다음 외에 라이코스, 야후 등 다수가 난립하고 있었다. 다음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이 전체 포털 시장을 지배할거란 가정하에 올랐다가 경쟁에 져 완전히 사라지는 걸 가정해 하락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은 바이오가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 매출이 100억이 안되고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기업의 주가가 작년 하반기에 한꺼번에 7~8배 가까이 올랐다. 우리나라 바이오 회사들이 굉장한 약품을 개발해 많은 돈을 벌 거란 가정하에서 주가가 움직인 것이다. 지금은 정점을 지나 의심이 커지는 단계로 바뀌었지만 기대는 여전히 살아있다.

바이오가 의심을 뛰어넘어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두 개의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먼저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이익이 크게 늘어난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 우리나라 신약 개발 1호는 1999년 SK케미칼이 만든 항암제 ‘선플라주’ 이다. 이후 여러 곳에서 29개의 신약을 만들어냈다. 회사별로 동아에스티가 5개로 가장 많고, SK케미칼, 동화약품, JW중외제약, LG화학, 종근당도 각각 2개씩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은 신약을 개발해도 해당 회사가 얻은 이익이 많지 않았다. 신약을 개발하고 1, 2, 3년이 지난 후 개발사의 영업이익 증가액이 각각 35.4억, 41.2억, -12.9억에 그쳤다. 신약개발로 2년차까지는 이익이 늘어나지만 3년차부터 효과가 없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규모도 문제다. 신약개발에 따라 이익이 늘어나는 규모가 크지않았다. 1998년 이전부터 지금까지 상장을 유지하고 있는 30개 제약사의 영업이익이 연평균 34억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약 개발의 영향력이 더 작아진다. 모든 신약이 아스피린처럼 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작년 4분기 이후 주가 상승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시장에서 얘기되고 있는 신약 계획들이 이미 개발을 끝내고 시판중인 신약과 근본적 차이가 있어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이익이 발생한다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아직 그에 대해 어떤 답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합리적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시장에서는 일부 바이오 회사의 향후 3년간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60%에 달할 걸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 중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은 게임이나 인터넷 포탈업체도 해당 지표가 25%를 넘지 않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최고 호황을 누릴 때 이익률이 50%를 겨우 넘을 정도다. 그런데 바이오 기업은 향후 3년간 이익률이 60%를 넘을 거라 가정하고 있다.

바이오의 수익성에 대해 아직 검증된 게 없다. 현재까지는 매출의 수십~수백배에 달하는 시가총액 만이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바이오의 진정한 상승은 인터넷 포털과 마찬가지로 막연한 기대에 의한 호황이 끝나고 생사를 가르는 불황을 겪은 후 살아 남은 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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