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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 대한 ‘일몰제 규제’로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해당 거주지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사업 추진을 원하고 있지만, 서울시가 ‘동의율 75% 룰’(정비사업 조합설립 조건)을 내세워 이를 막아 사업이 물거품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특히 서울시가 정비구역 해제와 관련 서울시장 권한을 대폭 강화한 조례 개정안을 만든 이후 정비구역 신규 지정은 크게 줄어든 반면 구역 해제 건수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지역 내 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5년 간 해제건수, 신규 지정 비해 5배↑
서울시 정비구역 해제는 지난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본격화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에 기반한 도시재생에 주력하며 정비구역을 대거 해제했다.
서울시와 업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5년간 서울시가 신규 지정한 정비구역은 72곳이지만, 해제 구역(직권 취소 포함)은 363곳에 달한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사업장이 신규 지정된 곳에 비해 5배나 많은 셈이다. 올해는 신규 정비구역 지정과 해제 지역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구역 해제 과정에서 직권 해제를 위한 요건(토지 등 소유주 동의율 3분의 1)이 너무 느슨한 데 반해 정비구역 자동 해제가 이뤄지는 일몰제 기한은 깐깐하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1 동의가 있을 경우 서울시장이 정비구역을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는 2016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이런 이유로 2017년 직권 취소된 정비사업장은 51곳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추진위원장 부재 등에 따른 정비사업 지연, 토지 등 소유자의 과도한 부담, 역사·문화적 가치 보존 필요성 등 직권 해제가 가능한 부분이 많아 서울시가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구역도 입맛대로 해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직권해제는 과거 조례에 규정돼 있던 현재 도정법에 따로 규정했다”며 “주민이 원하고 사업 추진이 불가능한 곳들은 이미 상당수 해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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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구역 자동 해제 기한도 너무 짧다는 지적이 많다. 도정법 20조에 따르면 정비구역으로 지정한 뒤 2년 안에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지 못하거나, 추진위를 설립한 후 2년 안에 조합 설립을 하지 못하면 일몰제가 적용된다. 또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뒤 3년 안에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해당 구역 토지 등 소유자가 일몰제 기한 연장를 요청하면 시·도지사가 이를 재량으로 정할 수 있다.
서울 은평구 증산동 증산4구역 재개발사업도 정비구역이 해제될 위기에 처했다. 이달 중순 정비구역 해제와 관련 은평구의회 의견청취 절차를 거쳐, 다음달 초 서울시 재정비위원회 테이블에 올라갈 전망이다. 위원회에서 해제가 결정되면 올해 서울 지역에서 ‘1호 정비구역 해제지’가 된다.
수색·증산뉴타운 9개 정비구역 중 가장 넓은 증산4구역(총 면적 17만2932㎡)은 2012년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14년 8월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다만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하 도정법)에 따라 추진위 설립 후 2년 기한 내 조합설립 동의율(75%)를 채우지 못했다. 당초 추진위는 해제기한 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토지 등 소유자 30% 이상 동의)을 채워 사업 연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지난달 증산4구역 추진위는 은평구청 앞에서 정비구역 해제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영기 증산4구역 추진위원장은 “최근 조합원 1680여명 중 77%가 재개발사업 추진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과거 75% 동의율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업 연장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10년 넘게 사업을 추진해 왔는데 다 물거품될 것으로 보여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장 역시 구역 해제에 대한 불만이 높다.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정비구역이 해제된 송파구 100번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사업 동의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도 서울시가 조합 설립을 못했다는 이유로 사업 연장 신청을 거부했다”며 “구역 지정 해제도 서울시 입맛대로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 중 정비사업 물량이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를 지체하면 결국 중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부족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마땅한 후속 대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이기 때문에 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