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베 총리, 일본 여성계 목소리 듣는가

논설 위원I 2015.10.23 03:00:00
일본 여성계가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위안부 문제 해결모임’이 그제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양국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들은 또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가 받아들일 방안을 일본 정부가 제시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가해 사실을 인정 및 사죄하고 그 증거로서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제안했다. 아베 총리에게는 뼈아픈 지적일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말 결성된 이후 20여일 만에 일본 여성계 인사 1500여명이 동참한 ‘위안부 문제 해결모임’은 ‘피해자가 받아들일 방안’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지식인 281명이 지난 6월에 내놓은 해결책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한·일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아베 총리의 결단을 촉구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상황 진전이라고 여겨진다. 일본에도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건재함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여성 모임의 주장은 타당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고령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죄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가 그러하다. “아베 총리가 방한 기간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대면할 용기를 내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 일본 시민들이 할 일”이라는 역할론도 마찬가지다. 이제 관심은 아베 총리가 “민간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해결책을 마련하고, 양국 정부의 합의를 만들어 달라”는 이들의 요구를 과연 수용할 것인가에 쏠린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행적에 비춰볼 때 전망은 회의적이다. 아베 총리는 양식 있는 일본 시민들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지성들의 사죄 요구를 일관되게 외면해 왔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수정을 요구하는 인사를 이달 초 개각에서 문부과학상에 등용하는 등 오히려 강공 일변도로 나갈 뿐이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 47명의 평균 연령이 이미 90세이므로 문제 해결 시한은 기껏해야 10년도 안 남았다. 아베 총리는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황금시간’을 놓친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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