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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총의 소확행] "전기는 누구 겁니까?" 루트에너지의 당돌한 물음

김은총 기자I 2018.10.28 06:00:00

시민이 에너지 소유권 갖고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크라우드펀딩으로 누구나 쉽게 재생에너지에 투자
지방경제 활성화 +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도 일조

[이데일리 김은총 기자]“우리가 쓰는 전기는 누구 겁니까?” 이 물음을 던지면 대부분 ‘한국전력공사’ 혹은 ‘정부’라고 답할 것이다. 여기 “우리가 쓰는 전기를 우리 것으로 만들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소셜벤처 루트에너지의 윤태환(36) 대표다.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6일 성동구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윤 대표는 ‘루트에너지’라는 이름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나무뿌리가 영양분을 섭취해 나무가 성장하는 것처럼 에너지 산업도 가장 아래있는 시민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

시민들이 직접 발전소를 짓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의 소유권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시장이 시민에 맞춰 발전하고 국가가 성장한다는 상향식 모델 이론이었다. 단 그 에너지는 지구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재생에너지여야만 의미가 있다고 윤 대표는 말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인류의 최후를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의 폭염과 겨울의 혹한, 미세먼지의 습격과 태풍의 잦은 수도권 상륙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윤 대표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이미 벌어진 일이며 되돌리기 힘들다는 것을 설명했다.

할 수 있는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올라가는 지구 온도의 상승 속도를 최소한으로 늦추는 것뿐이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재생에너지의 확대다. 실제 최근 IPCC(기후 변화 관련 유엔 회의)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로 늦추려면 전력생산의 70∼85%를 재생에너지가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루트에너지 투자발전소 정보(사용자 화면)
루트에너지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땅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는 것, 또 하나는 남의 땅에 짓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투자하는 것이다.

전자는 신청만 하면 루트에너지가 발전소 설립 가능 여부와 허가 문제, 규모와 경제성 등을 검토해준다. 다만 100곳이 신청하면 실제 가능한 곳은 5곳도 없다. 땅의 경사도와 일조량, 전력 개통 상황, 도로 사정, 법적인 문제 등 다양한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 특히 루트에너지는 발전소 인근 지역의 주민이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 발전소와 가까울수록 우대 금리도 있다. 그래야 사업이 안정되고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민원도 슬기롭게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천햇빛공유발전소(위)와 벼락도끼포천햇빛발전소
루트에너지는 지난해 서울 양천구와 경기도 포천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선착순으로 투자금을 모집했는데 페이지가 열린 지 5분 만에 목표 금액을 모두 달성했다. 6.5~7.5%에 달하는 수익금도 차질없이 잘 전달되고 있다. 365일 비가 계속 오지 않는 이상 수익금이 펑크 날 일은 없다는 것이 윤 대표의 설명이다.

본격적인 사업도 대구와 홍천, 의성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범사업 때보다 5~40배 큰 규모의 발전소가 건립될 예정이다. 현재는 경제성이 좋고 사업속도가 빠른 태양광 사업이 중심이지만, 풍력과 지열, 바이오, 소수력, ESS배터리 사업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일명 ‘태양광 이모작’으로도 불리는 솔라 셰어링(Solar Sharing) 농법
“농부가 벼농사만 지으면 1년에 평당 1500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근데 논 위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벼농사를 지으면 평당 5만5000원을 벌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농사를 더 이상 짓지 못하게 되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루트에너지는 지방경제 활성화나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이라는 중요한 사회적가치도 창출하고 있다. 농촌 고령화로 버려지는 땅들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고 은행 예·적금보다 높은 이자의 안정적인 수익을 노인들에게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지역의 커뮤니티 비지니스나 공동체 활동도 중요한 사회적자산이다.

루트에너지의 목표는 분명하다. 2070년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투자자가 10만명이 되면 입소문이 나고 100만명이 되면 정치인이 움직이고 하나의 사회적규범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윤 대표의 지론이다. 어려운 목표지만 윤 대표는 오히려 반문한다. “그게 사회적기업가가 해야 할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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