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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어드바이저 돋보기]⑧ 투자자문업 자본금 규제 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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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 기자I 2018.06.26 00:00:00

천영록 두물머리 대표

로보어드바이저는 본질적으로 온라인 상의 고객에게 제공하는 다이렉트 자산관리 상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금융투자상품으로 이뤄지는 자산관리 시장 자체가 없다. 오프라인에 대칭되는 개념이 없으니 온라인 상의 서비스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자체가 부족한 것 아닐까. 로봇이라는 단어에만 집중해 마치 인공지능 만능 트레이더가 탄생할 것처럼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으나, 국내에 보편적인 자산관리 시장이 없다는 사실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관리는 대부분 부동산으로 이뤄지고 있다. 십만여 개의 공인중개사가 우리 국민들의 투자와 노후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투자자문사나 투자일임업자는 몇 백개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국민은 평생 이러한 투자자문사의 문을 두드릴 일도 없다. 문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투자자문사와 투자일임업을 겸업하는 회사들이 20만 개가 넘게 존재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럴까. 리서치 회사인 체룰리 어소시에이츠(Cerulli Associates)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 RIA (Registered Investment Advisor·한국의 독립투자자문업) 산업 규모는 지난 5년간 연 평균 11% 이상 성장하고 있어 자산관리 채널 중에 가장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혹자는 RIA의 고객자산 규모가 2020년 증권사가 직접 관리하는 고객 자산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전체 금융권 운용자산의 30%에 달한다. 국내에 독립투자자문업 실행 후 등록 회사가 하나도 없는 것과 대조된다.

이렇게까지 투자자문 산업이 외면받는 이유는 뭘까. 혹자는 우리나라 국민이 자산관리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퇴직연금 제도의 발달이나 드넓은 영토에 증권사와 은행이 전부 진출하지 못해서 독립투자자문업이 자연스레 자리 잡은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혹자는 우리나라 국민이 ‘자문은 공짜’라는 인식이 뿌리 깊어서‘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겪어보니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20만 분의 일만큼도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은 인터넷으로 옷을 살 리 없다’ 혹은 ‘우리나라 사람은 온라인 콘텐츠에 돈을 내지 않는다’처럼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두 경우 모두 뛰어난 업체들의 창의적인 사업모델로 한순간에 옛말이 된 이야기들이다. 독립투자자문업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더는 우리나라 국민성을 변명 삼아 무능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자문업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게는 억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최소 자본금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규모 창업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미국의 경우엔 자문업은 물론 투자일임업도 자본금 규정이 없다. 어차피 고객의 자산은 위수탁사에서 관리하므로 횡령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투자자문사가 고객의 돈을 횡령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오히려 일반인은 제대로 된 투자자문사를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온갖 비등록 업체에 손쉽게 사기를 당하고 횡령을 당한다. 고객이 귀찮은 주문을 대리해 처리해달라며 어쩔 수 없이 공인인증서를 맡기는 관행들이 있는데, 불법이긴 하지만 사실상 현재의 규제들이 이런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공인인증서를 맡기니 통제 불가능한 사고로 이어지기 훨씬 쉬운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투자를 자문하고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은 세 부류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제공하는 PB 서비스, 보험설계사들이 보조적으로 제공하는 재무설계 서비스, 그리고 증권사와 1인 1사로 단독 계약을 맺은 프리랜서 투자권유대행업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어디에도 일반 대중을 위한 금융투자상품 중심 서비스는 자리잡기 힘들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무대가 설치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로보어드바이저라 해봤자 온라인 독립투자자문사에 지나지 않는다. 독립투자자문업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어느 세월에 로보어드바이저를 정착시킨단 말이며, 로보어드바이저의 가능성에 대한 담론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무엇보다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일임업까지 포함된 독립투자자문업의 자본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자본금을 강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생 산업에서의 창업은 대단히 큰 리스크를 짊어져야한다. 이러한 창업을 본격적으로 장려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관행대로 이어갈 것인지 진정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의미 있는 수준의 규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자산관리를 도와주기 위해 진심으로 고민할 투자자문업 생태계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저금리 고령화 시대에 부동산의 상승기마저 끝나는 순간 국민들의 노후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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