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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톡' 사태는 시작일뿐…다른 법률 서비스 스타트업도 고사 위기

김현아 기자I 2021.09.08 01:30:58

[진격의 플랫폼, 혁신과 공정사이]⑤법률분야
설 자리 잃은 리걸테크
법무부 이미 로톡 합법 인정했는데
변협은 불법이라며 가입 변호사들 징계
소비자만 법률 정보서 소외돼 답답
AI통한 판결예측, 법률문서 작성 등
변호사법에 막혀 유료 서비스 제동
"외국선 유니콘까지 나오는데"

[이데일리 김현아 이성웅 기자]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창립 69주년을 맞은 대한변호사협회와 서비스 8년 차를 맞은 로앤컴퍼니의 법률 플랫폼 ‘로톡’이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변협이 지난달 11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는 8월 현재 2855명이다. 변협의 탈퇴 압박 이후 28%가 줄었다.

‘로톡’은 인터넷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과 방식에 따라 간편하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다.의뢰인이 자신의 상황을 올리고 여러 변호사들이 수임료를 올리면 의뢰인이 변호사를 고르는 ‘로마켓’이 각종 소송을 당한 끝에 사업을 접은 뒤, 특정 로펌에 종속되지 않고 공급자(변호사)와 수요자(의뢰인)가 만나는 오픈 플랫폼 으로는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로톡은 이용자 후기를 통해 ‘이혼 전문’, ‘세무 전문’ 등 내게 필요한 전문 변호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덕분에, 2014년 서비스 론칭이후 월 상담건수가 2017년 7월 한달동안 3602건에서 2021년 7월에는 2만 2617건으로 크게 늘었다.

변협, 집행부 바뀌면서 징계 시작…로톡, 헌법소원·공정위 신고

하지만 변협은 로톡을 △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사무장 로펌’과 다르지 않아 불법이고 △ 플랫폼에 광고·홍보·소개를 의뢰하거나 참여·협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변호사업무 광고규정 위반’이라며 가입 변호사 징계 절차를 시작했다. 변협은 1440명에게 보낸 서울지역 로톡 가입 변호사의 1차 소명자 중 로톡을 탈퇴하지도, 소명서를 제출하지도 않은 391명을 대상으로 2차 소명서 제출을 요구할 예정이다.

변협이 로톡을 고발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2월 이종엽 변호사가 51대 협회장에 당선되면서 검찰 고발뿐 아니라 변호사 징계라는 강수까지 두고 있다. 서울변회장에 당선된 김정욱 변호사와 이종엽 협회장은 로톡을 고발한 직역수호변호사단에서 각각 상임대표, 공동대표를 맡았었다.

잇단 고발과 규제 강화로 가입 변호사들이 위축되자, 로톡도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5월, 변호사 60명과 함께 변협의 광고 규정 개정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도 냈다.

로톡은 또 변협을 공정거래법 및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변협의 광고 규정과 윤리장전이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경쟁제한에 해당하고 △표시광고법상 사업자단체의 표시·광고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는 세종시에 있는 본부 카르텔조사국에서 조사중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실제 징계받을 가능성은 적어…“로톡 탈퇴 유도작전”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법무부가 로톡을 불법이 아니라고 한 만큼, 징계당한 변호사가 법무부로 이의를 신청하면 뒤집어질 것”이라면서 “변협의 징계권은 법에 의해 위임받은 것이고, 사법 해석 이전에 행정 해석을 먼저 따르는 만큼 실제로 징계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자단체가 아니라는 변협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유일한 법정협회로서 사업자 대표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의미로든 변협의 징계 절차는 진행될 것이고 계속 위협을 가해 탈퇴를 유도하는 작전으로 보인다”며 “로톡을 두고 변호사법 위반이나 ‘사무장 로펌’이라 주장하는 것은 프레임 씌우기다. 변호사법 위반이라면 두 번이나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고, 박범계 장관이 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대법원, 승소율 공개도 합법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는 어느 변호사가 잘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로마켓이란 회사에서 변호사별 승소율을 집계해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지금은 사건번호뿐 아니라 당사자 이름까지 알아야 판결 정보를 검색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사건번호만 알면 가능했던 점에 착안해 각종 웹페이지에서 정보를 긁어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정리해 보여주는 서비스를 한 것이다.

당시 변호사 단체들은 “쉬운 사건도 있고 어려운 사건도 있는데 불공정하다”고 반발하면서 형사고소와 고발을 했지만, 2011년 대법원은 승소율 공개 서비스는 불법이 아니라고 최종 판단했다. 로마켓은 이외에도 변호사 역경매 선택 서비스, 변호사 인맥 분석 서비스 등을 제공했는데, 법원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인격권 침해 우려가 있는 인맥 분석 정도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국내 리걸테크(Legal-Tech)분야는 여전히 규제의 덫에 신음하고 있다.

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나 계약서 자동검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소송 결과 예측 같은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했다가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될 처지다. 이는 미국에서 이혼 소장을 작성할 때 수백~수만 달러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리걸줌’을 통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소장을 작성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변호사 입지 줄어들라…AI 활용한 소송결과 예측 꺼려

우리나라에도 일부 기업이 있지만 법무법인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일 외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유료로 서비스를 제공하진 않는다.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변호사법(34조)위반 논란 때문이다. 현재 리걸인사이트 같은 스타트업들이 제공하는 고소장, 행정심판청구서, 행정소송소장 자동작성 서비스는 무료다.

인공지능(AI) 기반 플랫폼으로 소송 결과를 예측해주는 서비스도 논란이다. 기술적으로는 법률 용어를 모르는 일반인도 사실관계를 입력하면 범죄가 형법 몇 조에 해당하는지, 형량은 어떻게 되는지 AI가 예측해주지만, 변호사들은 꺼리고 있다. 대형 로펌의 부가서비스 정도면 몰라도 일반 국민 대상의 서비스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에게 AI가 판례를 기반으로 정확하게 예측해주면 변호사들의 입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코리아스타트업 포럼 산하의 리걸테크산업협의회에 소속된 30여 개 스타트업들은 로톡 사태에 숨죽이고 있다. 또, AI 활용 소송 결과 예측 서비스는 통계서비스라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서라도 즉각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외국에서는 리걸테크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이 20여 개 나온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제도적인 걸림돌 때문에 대부분 초기 단계”라면서 “이대로라면 변호사법이 시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정되더라도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외국 기업들이 독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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