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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에 숨겨진 비밀코드

남궁 덕 기자I 2014.01.03 06:00:00
[남궁 덕 칼럼]“세계는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하루 중 주로 머무는 집안 거실과 사무공간도 확 달라질 거다. 서재의 모습도 지금과 확 달라질 테고….”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 있는 실버라도컨트리클럽 강당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300여 명의 기자들을 상대로 열강이 펼쳐졌다. 강사는 2년 뒤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책을 내면서 한국 오피니언리더에게도 유명해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당시 MIT 미디어랩 소장이었다. 그는 “수십년 간 개발과 발전의 조건은 획일화와 통일성, 원리원칙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강조하는 것이었지만,이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개혁가를 기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둬야 미래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국가지도자가 제시할 법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나 세상은 네그로폰테 교수가 예측한 ‘디지털 세상’으로 탈바꿈했다. 디지털 사회의 창조자들을 보면 그의 예언이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원조격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 ‘디지털 네트워킹’ 사회의 주도기업인 페이스 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세계인을 쥐락펴락하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이 그가 예측한 새로운 환경에서 잉태된 개혁가들이다. 그들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한다.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84년 갑오년. 한반도 상황은 예측불허였다. 무능한 왕정은 벼랑을 향해 달려갔고, 그 틈새를 일본과 청나라가 노리고 들어왔다. 그해 3월 전라북도 고부군(지금의 정읍과 부안군 지역)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던 백성들의 대반격이었다. 반도는 어지러웠다. 같은 해 7월 김홍집이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210건의 개혁안을 마련, 시행에 나선다. 갑오경장(甲午更張). 일제의 입김이 들어간 탓에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했지만, 당시의 개혁안은 획기적이었다. 왕과 관련된 업무를 국가운영 업무와 분리하는 등 통치시스템을 근대적 체제로 바꾸고, 문벌과 신분 계급을 타파하는 등 인재 등용의 방법을 쇄신하는 주요 내용이었다. 노비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의 재혼을 허용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눈여겨볼 건 120년 전 이조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 해법을 제시한 거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과제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매래가 될 수 있도록 수석들이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 달라”고 했다.

경장(更張)이란 말은 원래 거문고의 줄을 고쳐맨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한나라 시절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인재를 등용 방안을 진언하면서 썼던 표현. “거문고 줄을 바꿔야 하는데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악사라도 제대로 조화로운 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혁신을 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정치가라도 잘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바꿀 땐 판을 확 바꾸진 않고선 원하는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얘기다. 다만 1884년 갑오경장의 실패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국가 설계든 기업 경영이든 공감대 없이 서두르면 ‘작심삼일’로 끝나는 새해 결심처럼 헛될 수 있다는 걸. 정치인이나 기업인 모두가 새겼으면 한다. <총괄부국장 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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