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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 가격 후려치기…한여름부터 과열경쟁 조짐

김지섭 기자I 2018.08.13 02:00:00

SK·녹십자·일양약품 등 자체 4가 독감백신 개발
독감 유행 시즌 앞두고 출하시기부터 시장 선점 경쟁
만원대 이하 공급가 제시도 빈번…“치킨게임 양상”
개발 업체들 저가 경쟁에 ‘전전긍긍’…병·의원만 이득

그래픽=이서윤 기자
[이데일리 김지섭 기자]대체로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유행하는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이 한여름인 벌써부터 과열경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업체들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때문에 공들여 4가 독감백신을 개발한 국내 제약사들은 지나친 가격 경쟁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4가 독감백신은 독감을 유발하는 A형 바이러스 2종과 B형 바이러스 2종을 모두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다. 국가무료예방접종사업(NIP)에 포함된 3가 백신보다는 예방 범위가 더 넓다.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위해 제약사들이 4가 백신을 개발했지만 저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병원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GSK가 지난 2015년 4월 국내에서 처음 4가 독감백신 ‘플루아릭스테트라’를 출시하고, 이듬해 SK케미칼(285130), GC녹십자, 일양약품(007570) 등 국내 제약사들이 4가 백신을 개발해 경쟁에 뛰어들었다. 동아에스티(170900)와 보령바이오파마 등은 사노피파스퇴르 등 기존 제조업체에서 원료를 가져와 4가 백신 판매에 나섰다. 이에 약 6000억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독감 백신 시장에서 4가 백신 점유율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백신은 매년 예방하는 바이러스 균주가 달라지기 때문에 생산한 해에 팔지 못하면 모두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물량을 남기지 않고 낮은 가격에 팔아치우려고 하는 이유다. 이에 연초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유행할 것으로 예측한 바이러스와 관련, 제약사들은 이달께 백신 출하 준비를 마치고 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격을 공개하지 않지만 통상 4가 독감 백신의 개당 공급가는 1만 5000원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해 약 1만 2000원부터 언급되던 공급가는 올해 들어 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백신 판매사의 한 영업사원은 “병원을 찾았더니 경쟁사에서 부가세를 포함해 9900원에 제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보다 낮은 가격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는데 점점 제약사간 치킨게임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생산시설과 연구개발비를 들여 자체 4가 독감백신 개발에 성공한 국내 제약사들은 터무니없는 공급가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부에서는 이미 3가 백신과 별 차이 없는 가격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저가 경쟁에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의사들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비급여 항목인 4가 독감백신은 병·의원이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 저렴하게 들여오는 만큼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의원에서 4가 독감백신을 접종하는 가격은 1만 5000원부터 4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일각에서는 의사가 대놓고 경매에 부치듯 더 저렴한 백신을 쓰겠다며 저가경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4가 독감백신을 자체 개발한 회사는 투자한 것이 있기 때문에 저가 경쟁에 무조건 뛰어들 수도 없다”며 “제 살 깎아내기식 저가 경쟁에 손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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