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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연극계를 강타한 ‘미투’ 운동(MeToo·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이 뮤지컬계로 번져가고 있다. ‘명성황후’ ‘영웅’ 등의 대형 창작뮤지컬을 제작한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가 24일 성추행 의혹에 대해 사과한데 이어 수현재컴퍼니 대표로 대학로에서 상업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해온 배우 조재현도 관련 의혹을 인정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중견 뮤지컬배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도 올라와 뮤지컬계가 노심초사하고 있다.
윤 대표는 24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28일로 예정한 일본군 위안부 소재의 뮤지컬 ‘웬즈데이’ 제작발표회 연기를 밝혔다. 자신에 대한 성추행 의혹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윤 대표는 “저에 대한 의혹을 먼저 푸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했다”면서 “저의 행동으로 불쾌함을 느낀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공개되자 이날 오후 뒤늦게 공식 사과문을 내고 성추행을 인정했다. 윤 대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하겠다”며 “저의 거취를 포함해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겁게 고민하고 반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배우 최율의 폭로로 성추행 논란에 휘말린 조재현도 이날 자신의 성추행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조재현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30년 가까이 연기생활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도 참 많았다”면서 “저는 죄인이다.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뮤지컬배우가 관객을 성추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연극·뮤지컬 캘러리에는 중견 뮤지컬배우 A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는 이 글을 통해 지인을 통해 알게 된 A가 비싼 공연을 보여주고 술자리를 가진 다음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와 A의 소속사 모두 연락을 두절하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표와 조재현 모두 뒤늦게 성추행을 시인하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두 사람이 대표로 있는 제작사에서 진행 중인 공연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콤은 오는 3월 6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윤 대표가 연출을 맡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올릴 예정이다. 수현재컴퍼니도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공연 중이며 연극 ‘에쿠우스’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수현재컴퍼니 관계자는 지난 23일 조재현의 성추행 논란이 불거진 뒤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조재현 대표의 논란에 대해 현재까지 논의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입장은 조재현 대표의 소속사에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뮤지컬은 연극과 달리 제작사의 힘이 세서 문제점을 쉽게 폭로하기 힘들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뮤지컬계도 그동안 침묵해온 내부의 성범죄 의혹을 수면 위로 끄집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뮤지컬계의 한 관계자는 “제작 스태프들 사이에서 성추행 이야기가 간혹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업계에 소문이 나면 다음 작품을 못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연극계의 ‘미투’가 뮤지컬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