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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정경화 ‘엄마 리더십’ 평창대관령음악제 내공 키웠다

김미경 기자I 2017.08.02 03:00:00

여름밤 대관령, 서늘한 러시아 선율 내린다
동계올림픽 유치기원 목적 시작
예술가 670명 참가, 43만명 관람
음악학교 통해 임지영 등 발굴
정명화·정경화 8년째 예술감독
6일까지 '볼가강 노래' 주제로 열려
올림픽 이후 재정자립은 숙제로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7말8초.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면 대관령은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로 북적인다. 해발 700m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26일 개막한 ‘제14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역시 매회 매진을 기록 중이다.

클래식음악의 불모지였던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을 목적으로 2004년 출발한 이 음악제는 그해 첫 회 1만676명이 관람했고, 그중 절반 이상인 972명이 외국인이었다. 그로부터 14년.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우리나라 대표 여름 음악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몇 달 전부터 예매를 서두르고, 유명 아티스트들이 먼저 러브콜을 보낸다. 위상이 이토록 높아진 데는 공동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첼리스트 정명화(73)·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 자매의 공이 크다.

△13년 누적 방문객 43만명…3년간 좌석점유율 96%

평창대관령음악제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첫 회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관람객 수는 43만2629명에 달한다. 2014~2016년 누계 기준 670명의 국내외 유명음악가(오케스트라·합창단 등 단체 제외)가 출연했으며, 최근 3년간(2014~2016) 평균 96%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2010년부터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초대 감독(2004~2009)의 뒤를 이어 일군 두 거장의 탄탄한 하모니 덕분이다.

정경화(왼쪽부터)·정명화 평창대관령음악제 공동 예술감독과 손열음 부예술감독.
정명화·경화 공동 예술감독은 무대 안팎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제 기획부터 연주자 섭외, 프로그램 선정과 후원 유치 등 음악제의 내실과 외연을 두루 살피며 행사 관계자 및 스태프들과도 격의없이 어울린다. 수많은 잡무에도 연습일정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한편 국내외 연주자를 찾아 격려하는 일도 잊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교육과 공연을 함께 하는 미국의 아스펜음악제를 벤치마킹했는데 성공적이었다”며 “강효 전 감독이 주춧돌을 놓고 자매의 역량에 국제적 인맥이 더해 국제적 위상에 걸맞는 출연진들을 꾸려왔다. 음악 앞에선 엄격하지만 무대 밖 따뜻하고 배려 많은 엄마 같은 리더십은 음악제를 한 단계 점프시킨 것으로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음악회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시도는 음악제의 백미로 꼽힌다. 2015년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하프시코드(바로크시대 건반악기·쳄발로)에 도전하는가 하면 2016년 정경화 감독이 데뷔 60년만에 정통 클래식 대신 재즈곡 ‘고엽’을 나윤선과 협연하기도 했다. 올해는 ‘볼가강의 노래’를 주제로 8월 6일까지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등 러시아가 배출해낸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7월 26·28일에는 한·중·일 음악가들이 함께 서는 무대가 펼쳐졌으며 29일에는 마린스키 오페라단이 내한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을 국내 초연했다.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국내외 음악계에 신뢰와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음악적 수준을 계속 높게 유지했기 때문”이라며 “초창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최고 연주와 독창적인 프로그래밍을 보여줬다. 음악 애호가들이 기대하는 수준을 유지한다면 음악제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료=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 성장판…명연주자·음악도 만남 주선

명연주자와 음악도의 만남도 주선한다. 개인레슨을 비롯해 마스터 클래스·특강 등으로 이뤄진 음악제의 음악학교를 거쳐간 학생수(2004~2016년)도 33개국, 1790명(외국인 학생 수 569명)에 달한다. 차세대 연주자로 손꼽히는 임지영·신지아·클라라 주미강·폴황·강승민 등도 음악학교 출신이다.

올해도 조성현 쾰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라뒤 블리다르 영국 런던왕립음악원 교수,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체비치 등 15명의 저명한 연주자들이 참여해 국내외 명문 음대 및 음악원 학생들을 가르친다.

2015년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한국에서 저명한 연주자와 교수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드문 기회”라며 “레슨·연주도 좋지만 식사를 함께하거나 옆에서 거장 연주자를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고 귀띔했다. 정명화 감독은 “수학한 학생 중에는 프로 음악가로 성장해 다시 음악학교의 아티스트와 교수진으로 참가하는 선순환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음악학교에 참여한 많은 학생들이 콩쿠르 우승 등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자료=평창대관령음악제
△재정자립 및 부족한 숙박은 과제

과제는 있다. 숙박 시설 확보와 지역과의 연계다. 류 평론가는 “연주자는 물론 축제를 즐기려는 음악팬들을 넉넉히 수용하기에 숙소가 턱없이 적다”며 “이는 축제의 접근성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정작 지역 주민의 반응은 높지 않다는 한계성도 짚었다. 그는 “음악도시로 키우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 통영국제음악제처럼 시즌 외에 주요 공연을 연중 지속적으로 유치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설명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리픽 이후 재정 자립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조직위 측은 “발레·마임·국악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레퍼토리 확장은 물론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통영국제음악제 등과의 협력으로 음악제 위상을 강화하는 데 힘써왔다”면서 “통영음악제와의 협력을 통해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를 함께 초청해 예산 절감 및 교류 강화를 이끌어냈다. 후원금 및 물품 등 다양한 후원 유치로 재원 절감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김성환 강원문화재단 이사장도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내년 이후 음악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해외 거장들이 서로 오고 싶어하는 국내 대표 음악제로서 계속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국내 초연했다. 조르벡 구가예프가 지휘한 이 오페라는 콘서트 형식으로 1시간 40분여 동안 펼쳐졌다(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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