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넓은 공터서 왜 후진주차를?” 보험금 살인 파헤친 경찰의 ‘촉’[그해 오늘]

김혜선 기자I 2023.09.04 00:00:01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2008년 9월 4일. 천애고아인 정신지체인을 살해하고 사고사로 위장해 8억원의 보험금을 타낸 A씨(당시 41세)와 공범 B씨(당시 40세)가 구속됐다. 당초 이 사건은 단순 사고사로 묻힐 뻔 했지만, 사건 현상을 둘러보던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수사에 나섰다.

사고 당시 C씨의 모습. (사진=KBS 교양 유튜브 ‘긴급출동 24시’ 캡처)
사망한 피해자 C씨(당시 31세)는 그해 4월 12일 평택시 안중읍 소재 한 농장에서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한 농장 앞 공터에서 트럭을 주차하던 B씨는 후진으로 주차를 하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을 받고, 자신의 차량 아래에 깔린 C씨를 발견했다. C씨의 시신은 부검도 되지 않고 그대로 C씨를 데리고 있던 인력사무소 사장 A씨에게 인계됐다. 그렇게 C씨는 사흘 만에 화장됐다.

동네에서 무시 받던 장애인의 죽음은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평택 현장으로 달려온 경기 광수대는 B씨가 왜 굳이 넓은 공터에서 후진으로 주차를 했는지 의아해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그대로 차량을 전면주차해도 나중에 차를 충분히 돌려 나올 수 있는 여유공간이 있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C씨에 가입된 생명보험은 2개였다. 가입 시기도 2006년 4월 4일과 그 해 12월 8일이었다. 매달 30만원이 넘는 보험료는 모두 A씨가 내고 있었다. 거기에 사망 당시 C씨의 신체에는 정확히 가슴 부근에만 여러 번 왔다갔다 한 듯한 바퀴 자국이 찍혀 있었다. B씨가 ‘무언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핸들을 틀어 장애물을 피해 주차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신체 한 곳에만 바퀴자국이 집중된 점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C씨의 시신이 화장된 탓에 정황 증거만 확보했을 뿐, 직접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사망 당시 사진과 병원 CT사진 등에서는 C씨가 질식사한 정황이 보였지만, 이것 만으로는 사인을 결론 내릴 수 없었다.

A씨와 B씨의 연결 고리를 찾아야 했다. 탐문조사 끝에 경찰은 사고 당일 A씨가 C씨와 다방 종업원을 데리고 소주를 10병 마신 사실을 알아냈다. 마지막에는 A씨와 여종업원만 둘이서 술을 마셨고, A씨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전화를 건 이는 B씨였다.

결국 경찰은 B씨로부터 “A씨가 보험금을 타면 빚 6000만원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자백을 받아냈다. A씨는 C씨를 데리고 있기 위해 지역 장애인협회 소장 명함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1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A씨에 징역 20년, B씨에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