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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름은 죄가 없다’…삼양 몰락시킨 ‘우지파동’[그해 오늘]

김영환 기자I 2022.11.03 00:03:00

공업용 기름으로 라면 만들었다는 투서…검찰 수사
삼양식품·오뚜기식품 등 5개 업체 적발…식품위생법 위반 혐의
삼양식품, 결정타 맞은 사건…1997년 최종 무죄로 일단락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989년 11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투서에는 몇몇 기업이 비식용 우지(소기름)로 라면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국내 라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든 ‘우지 파동’이다.

1963년 최초의 ‘삼양라면’(사진=삼양)
검찰은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 삼립유지,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

1980년대 한국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라면 시장 또한 급격히 팽창했다. 사건이 터지던 1989년, 라면 시장은 농심이 1위를 굳혀가는 가운데 삼양이 뒤를 잇고 있었다.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빙그레 등도 새 상품을 출시하면서 각축을 벌이던 중이었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한국 라면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라면 제조업체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시장에서 수거된 라면 제품만 100억원대에 이르렀다.

업계는 반발했다. 이미 20년간 우지를 통해 라면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사용을 권장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라면에 활용된 우지가 1989년 개정된 식품공전 중 원료조항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사건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을 정도다. 소비자 단체들도 분노에 차 성명 발표 및 불매운동으로 라면 업계를 압박했다. TV 토론에서도 학자, 당국, 소비자 등이 나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이 우지에 대해 무해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후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정부가 보건사회부, 검찰, 학계, 소비자단체 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된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사건 발생 13일만에 내려진 소위원회의 결론은 ‘이상없음’이었다.

결국 법원은 구속된 5개의 업체 대표와 실무자 등 10명에 대해 보석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1997년까지 이르른 법정 다툼 결과 최종 대법원의 무죄 판결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신라면’(사진=농심)
그러나 이미 한국 라면 시장은 농심이 부동의 1위로 자리매김한 뒤였다. 농심은 60% 이상의 라면 시장을 점유했고 삼양 이외의 회사들은 10%도 되지 않는 시장만을 나눴다.

사건은 지난 2016년 다시 한 번 입길에 올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질 당시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 전 실장이 농심의 법률고문으로 매달 200만원 가량을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우지 파동 당시 삼양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총장이 김기춘이었다는 사실이 추가되면서 ‘보은 논란’을 낳았다.

논란이 터지자 농심은 김 전 실장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고 결국 김 전 실장이 고문직에서 자진 사임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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