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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보다 거친 질감에 새긴 토속적 미감…박수근은 누구[박수근 행적 의혹③]

오현주 기자I 2022.07.26 00:01:00

독학으로 미술공부 가난과 싸운 시절
투박한 색감, 서민 향한 따스한 시선
소장가 물론 일반대중에게 사랑받아

박수근이 1962년에 그린 ‘나무(나무와 두 여인)’(캔버스에 유채·130×89㎝).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연 박수근의 대규모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2021년 11월 11일∼2022년 3월 1일)에 나온 대표 도상이다. 박수근이 즐겨 그린 나목과 두 여인이 나온다(리움미술관 소장).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키만 훌쩍 키운 마른 나무 아래에는 늘 여인들이 있다. 등에 아이를 업었든, 머리에 소쿠리를 올렸든. 우린 그이들이 말을 섞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저 멀찌감치 서로 바라보든가, 가던 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어찌 보면 모두가 동지인 듯도 하다. 나 사는 세상에 함께해주니 그저 좋을 뿐이라고 말없이 마음으로만 전하는.

잎이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란 뜻의 ‘나목’을 박수근은 즐겨 그렸다. 그 곁에서 서성이거나 머물러가던 이들의 이야기를 토속적 미감으로 풀어냈던 거다. 그 ‘나목’을 일찌감치 발견한 작가 박완서는 동명소설(1970)로 박수근을, 또 그이가 처한 현실을 그 앙상한 나무에 비유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집과 재산을 다 잃고 서울에 와 혹독한 추위를 맨몸뚱이로 버텨냈던 고단한 ‘환쟁이’. 하지만 죽어가는 고목인 줄 알았던 그 나무에 생명이 피어나더라고 했다. 박수근, 당신도 그럴 거라고.

그 암시였을까. 화강암보다 더 거친 표면에 심어낸 따뜻한 시선은 이내 사람들을 움직였다.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풍경’ ‘세 여인’ ‘시장 사람들’ 등 잔잔한 서정에 심어낸 투박한 색감, 무엇보다 서민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먼저 읽히는 작품들은 소장가는 물론 일반대중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 향토적인 주제와 시선이 박수근을 ‘국민화가’로 꼽는 가장 큰 이유였던 거다.

1914년 강원 양구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수근은 열두 살 무렵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졸업한 이후 그림은 독학으로 공부했다. 1932년 열여덟 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며 꿈이 실현되는가 했지만 더욱 어려워진 집안형편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등의 비운을 겪으며 청년시절을 버텨냈다.

해방과 전쟁이 휩쓴 한국화단에 서구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던 때에도 박수근은 묵직하게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꾸려나갔다. 한국전쟁 때 월남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잡은 뒤로 미군부대 내 매점(PX)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형 작가로 살았던 일화는 세상에 알려진 그대로다. 폐허가 된 서울에서 척박하게 생활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그린 단순한 구도와 돌처럼 작업을 해냈다. 그렇게 이름을 알려가던 그이를 붙든 건 급작스러운 건강악화. 결국 51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박수근 작품이 인기를 높여간 건 타계 직후인 1970년대부터다. 2007년에는 서울옥션에 나온 작품 ‘빨래터’(1961)가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박수근의 작품은 400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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