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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헐리우드 액션'에 십년간 재판 끌려다닌 부부[그해 오늘]

전재욱 기자I 2023.06.27 00:03:00

2009년 6월27일 음주단속 경찰관 팔비틀어 재판받은 박모씨
부부가 법정서 서로 무고함 주장했다가 위증죄도 덧씌워져
유죄 인정됐으나 10년 법정 공방 끝에 무죄로 뒤바뀌어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9년 6월27일 밤 11시. 박모씨 부부는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술을 마신 박씨는 조수석에 탔고, 부인 최모씨가 운전했다. 고등학생 아들도 타 있었다. 그 길에 음주 단속하는 경찰을 맞닥뜨렸다. 경찰의 단속을 고압적으로 느낀 박씨가 경찰관을 상대로 욕을 했다. 경찰은 가족을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밖에서 가족과 경찰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경찰관 한 명이 신음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박씨가 경찰관 팔을 비튼 것이다. 이 일로 박씨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됐다.

2009년 6월27일 박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장이 담긴 영상. 오른쪽 영상은 왼쪽 영상의 화질을 개선한 것이다. 빨간 원이 범행 당시 경찰관 팔이 꺾이는 모습.(사진=변호인 측 제공)
박씨는 억울했다. 경찰관 팔을 비틀지 않았다는 게 박씨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래서 정식 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다퉜다. 재판이 시작하자 경찰은 박씨의 범행을 증명할 당시 녹화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영상에는 경찰관 팔이 꺾이는 장면이 담겼다. 그런데 누가 팔을 꺾는지 명확하게 식별되지 않았다. 화질이 시원찮고, 중요 장면이 사람에 가린 탓이다.

부인 최씨가 법정에 나와서 남편의 무고함을 증언했다. 최씨는 ‘피고인(남편)이 피해자(경찰관)의 팔을 비트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라는 법정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현장에 있던 유력한 목격자의 증언이었다. 그럼에도 박씨는 벌금 200만 원을 재차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했지만 소용없었다. 2012년 1월 대법원에서 박씨의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 최씨는 위증죄로 기소됐다. 박씨의 유죄가 확정됐으니, 최씨가 남편의 재판에서 ‘남편은 경찰관의 팔을 비틀지 않았다’고 진술한 게 거짓 증언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박씨가 부인의 재판에 나가서 무고함을 주장했다. ‘증인(박씨)은 당시 경찰관 팔을 비튼 사실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서 “예”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최씨는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2012년 1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박씨는 다시 위증죄로 기소됐다. 부인 최씨의 위증이 유죄가 났으니, 박씨가 부인의 재판에서 한 증언도 거짓 진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14년 4월 1심은 박씨의 위증 혐의에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그간 화질이 개선된 영상을 보면 박씨의 범행을 인정하기 어려워 보였다. 피해자 경찰관의 진술이 엇갈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박씨가 경찰관의 ‘팔을 비튼 행위’를 인정하기 어려우니, ‘팔을 비틀지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위증으로 보기 어려웠다. 박씨의 위증 혐의는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판결을 기초로 박씨의 공무집행방해죄 재판은 재심이 이뤄졌다. 결국 2019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최씨의 위증죄도 그해 10월 재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박씨 부부가 음주단속을 당한 지 10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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