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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이 반가운 사람은 박씨였다. 박씨의 언니는 숨지기 두 달 전까지 생명보험사 3곳에서 보험에 가입해뒀다. 정작 숨진 언니는 자신이 보험에 든 것도 몰랐다. 보험금 보험설계사 박씨가 알아서 들어둔 것이었다. 보험금 수령인은 박씨였다. 사망 보험금은 1740만원. 지금 가치로 약 1억8000만원(2020년 기준) 상당이다.
생명 보험에 가입하고 곧 화재로 숨진 게 우연일까. 살아남은 언니의 아들 김모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군인이어서 화를 피한 김씨는 전역하고 가족의 죽음을 파헤쳤다. 어머니가 형편에 맞지 않는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고사한 게 영 께름칙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박씨가 자신의 인감을 써서 보험금을 타간 사실까지 알아냈다. 박씨는 조카 김씨가 자신을 추궁하자 700만원을 주면서 그만 물어보라고 했다.
더 의심이 가는 행동이었다. 김씨는 박씨를 고소하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게 호소하는 진정을 넣었다. 이렇게 재수사가 시작돼 비로소 1977년 9월 전말이 드러났다. 패륜 자체였다.
박씨는 1973년 보험설계사를 시작하고 범행을 기획했다. 그리고 처음 타깃으로 삼은 건 자신을 신뢰하는 친언니였다. 그날 언니네 집에 난 불은 박씨가 지른 것이다. 집에 들러서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에 불을 지르고 도망했다. 경찰이 찾아오자 “몸이 불편한 형부가 실수로 불낸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건이 종결했다. 유족은 조카뿐이었는데 군인이라서 쉽게 따돌렸다.
다음 타깃은 시동생이었다. 사업 얘기를 하자고 다방으로 불러내어 한눈파는 새 음료에 독약을 탔다. 그러고는 앞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미 시동생 앞으로 생명보험을 들어둔 뒤였다. 시동생의 보험금 4400만원을 타려면 동서(시동생의 부인)를 속여야 했는데, 보험사와 동서가 박씨를 의심하면서 보험금을 타지 못했다.
속이 끓던 박씨가 다음 범행을 꾸미는 와중에 조카 김씨가 박씨를 찾아왔다. 궁지에 몰린 박씨는 조카를 회유하려고 남편 돈 700만원을 훔쳐서 건넸다. 남편은 부인 박씨를 절도죄로 고소했다. 이로써 구속된 박씨는 언니 가족 살해 사건을 추궁받자 인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남편도 동생의 사망이 연관된 것을 의심하고 신고했다. 박씨는 이마저도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친구를 살해한 여죄가 또 드러났다.
박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한 인원만 5명이었다. 보험금을 노리고 벌인 희대의 연쇄살인에 사회는 격분했다. 박씨는 사형을 선고받고, 1983년 형이 집행됐다.
박씨 남편도 사건에 관여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있었다. 둘은 법률상 부부가 아니었다. 엄씨가 두집살림을 하면서 맺은 사실혼 관계였다. 엄씨는 자기 앞으로 보험이 가입된 걸 알고서 “다음은 내 차례일 수 있겠다”고 싶어 모두 해약했다고 한다. 실제로 박씨는 엄씨네 일가족 3명 앞으로 보험을 가입하고 살해를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