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김 대표의 방한에서 가장 주목됐던 것은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미국이 어떤 ‘당근’을 북한에 제시해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낼 것인가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날 이뤄진 한·미, 한·미·일, 한·일 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이같은 안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김 대표는 “우리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계속 이행할 것이다”라며 선제적인 제재 완화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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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 대표의 발언은 이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인터뷰를 통해 예견됐다. 설리번 보좌관은 20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 총서기의 ‘대화와 대결’ 발언과 관련해 “흥미로운 신호”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 그들이 우리와 보다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받자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이 ‘그래, 해보자, 같이 앉아서 협상을 시작하자’라고 말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김 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주목한다”면서 “그의 대화 언급이 곧 긍정적 반응으로 이어진다는 신호이길 바란다”고 말하며 한·미 협의를 시작했다.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우리의 만남 제안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한·미·일 3자 협의에서는 “때와 장소, 조건과 상관없이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리란 희망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8월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나 제재완화 등 북한의 최대 관심 사항인 ‘적대시 정책’과 관련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미·일 3자 협의에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을 거론했고, 특히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듯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김 위원장의 대화와 대결을 인용, “우리도 모두에 대해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착하며 대미 협상력 키우는 북·중
전문가들은 이미 협상을 위한 치열한 기싸움이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버락 오마바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적 타결’과도 다른 제3의 길을 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일괄타결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계적 접근을 하되, 북한의 행동이 없으면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론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에 워낙 북한에 대한 베테랑이 많은 만큼 당 전원회의에 대해 빠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움직이지 않으면 인센티브는 없다는 것이 바로 성김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실제 김 대표를 비롯해 바이든 외교·안보라인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부터 북한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이가 대다수 포진돼 있다. 김 대표만 하더라도 조지 W. 부시 정권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을 오가며 대북실무협상을 해온 인물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사실 러시아 전문가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그의 진전성과는 별개로, 북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배워나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며 “그와 달리 수십년째 북한을 다루는 김 대표를 비롯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웬디 셔먼 국무부장관, 설리번 보좌관,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정 박 동아태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 등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팀은 북한에 대한 분명한 기준과 판단이 이미 형성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북·중 연대를 강화하며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식량부족 문제 등 내부 안정이 시급한 가운데 미국을 자극해 대외 리스크를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다.
양무진 북한 대학교 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최근 전원회의에서 미·중 갈등관계를 십분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틈새외교의 방침을 정했다”며 “미국과의 대화 재개 시기를 저울질 하겠지만 미국과의 협상을 조기에 타결하지는 않을 것이며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자신들의 페이스대로 이끌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리룡남 주중 북한대사와 리진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는 시진핑 중국 주석 방북 2주년을 기념해 각각 중국 인민일보와 북한 노동신문에 기고문을 싣고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강화하고 싶은 양국이 전략적 소통행보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리룡남 대사는 특히 기고문에서 “북·중 양국이 긴밀히 단결하고 전략적 협력관계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적대세력의 악랄한 도전과 방해 음모를 분쇄할 수 있다”며 북·중 양국이 미국에 맞서 단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리쥔진 대사 역시 “조선 및 해당 각 측과 의사소통과 조율을 강화하면서 지역의 장기적인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함께 토의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 번영에 적극적인 공헌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시사한 셈이다.
이런 상황서 한반도 문제는 남·북, 북·미 문제를 떠나 미·중 갈등이라는 대외환경의 종속변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중국을 배제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있을 수 없다”며 “한국, 미국, 북한, 중국 모두 갈등의 확대는 원하지 않는 상황이고 북한 문제는 기후 대응 문제와 함께 미·중이 협력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