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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최초로 한 일은 아버지의 술집에서 ‘술병을 나르는 일’이었다.” 이 첫마디가 인생 절반을 말해준다. 대학에 다니던 스물네 살에도 그는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여전히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여기저기에 빚을 졌다”는 상태도 상태지만, 더 심각한 건 ‘돈’을 바라보는 태도였단다. 돈을 소중히 여기고 존경하라고 배운 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돈을 벌겠다고 꿈꾸던 10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거다. 대신 돈 많은 이들을 경멸하는 질투심 가득 찬 패배주의 비관론자가 버티고 있었다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이 완전히 뒤집힌 다음 알게 됐단다. 구체적으론 그렇게 미워하던 ‘페라리 빨간색 F430 스파이더’의 운전자가 된 뒤 말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놓인 간극은 돈 버는 기술보단 사고방식이더라고.
여기 한 백만장자가 있다. 영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기업을 포함해 여덟 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이다. 맞다. 롤러코스터 같은 사연을 업은 ‘그’다. 사업에 실패한 뒤 잔뜩 빚을 떠안고 파산.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는데 3년 만에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단다. 그것도 서른 살의 나이에. 영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자수성가한,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오르내린다니. 그럴 만도 하다. 왜 궁금하지 않겠나. 돈은 어찌 버는 건지,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부자는 과연 하늘이 내린 사람인지, 부를 부르는 주문은 따로 있는 건지.
△바닥 쳐본 30대 백만장자의 ‘돈’
탄탄한 경제이론이 아닌 감각적으로 부를 좇는 촉을 전수받으려 한다면 책은 꽤 적절해 보인다. 습관을 깨고 뻔한 생각을 뒤집고 편견을 부수고, 돈에 대한 고정관념을 들었다 놨다 한다. 덕분에 책에는 지금까지 별로 보지 못한 참신한 생각이 줄을 잇는데. 몇 가지만 엿보자.
시작은 ‘돈이 행복을 만든다’는 천진한 이야기로 풀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한 거짓말은 이제 집어치우란다. 행복을 위해 더 자주 더 쉽게 돈을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페라리가 있다면 녹슨 고물차를 갖고 있던 때보다 행복할 거라고 대못까지 박았다. ‘돈 벌기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도 했다. 돈벌이는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란다. 만약 내가 지금 가난한 상태라면 돈을 벌 수 없어서가 아니라 돈 버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란 거다. 게다가 ‘억만장자 DNA’ 같은 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투자천재란 조지 소로스는 단 하루에 1조원을 벌어들인 적이 있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연소득은 11조원이라지만 누구도 억만장자 DNA를 물려받지 않았다는 거다.
‘빈익빈 부익부’란 불멸의 진리에도 딴죽을 건다. ‘부자만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단 건 편견’이라고. 거금이 생긴 사람 중 70%가 5년 내 그 돈을 다 탕진한다는 통계가 말해준단다. 결국 가진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더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단 말이다.
종국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벌인 ‘돈과 부 철학 배틀’로 정점을 찍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가난한 사람의 생각에 부자는 “돈을 벌기 위해선 아이디어·에너지·소비가 필요하다”고 받아친다는 거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에는 “돈이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로, “돈을 벌 시간이 없다”는 데는 “가치가 낮은 일을 할 시간이 없다”로 대응하고. “청구서 비용을 지불했더니 남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는 가난한 사람의 푸념에는 “나한테 쓸 것을 먼저 쓰고 남은 돈으로 청구서 비용을 지불한다”로 응수할 수 있단다. 급기야 “사람들은 내가 돈 때문에 변했다고 판단할 거다”란 가난한 이의 걱정에 부자는 “사람들은 어쨌든 나를 평가할 거다”로 다독인다고.
△열심히 오래 일하면 성공한단 환상 깨야
이 모두를 종합해서 그린 큰 그림은 이런 거다. 거래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돈을 잃었다. 그 돈은 어디로 갔나. 다른 사람이 돈을 번 건가. 천만에. 그저 돈이 이동한 거란다. 돈에 가장 적은 가치를 두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에게로. 그 의미대로 움직일 뿐 돈은 누가 잃고 벌고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어찌 보면 이제까지 출현했던 경제담론 그 이상의 ‘형이상학’처럼도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면 젊은 치기도 흘려뒀다. ‘열심히 오래 일하면 성공한다는 환상에서 깨라’는 게 대표적. 어차피 다른 누군가를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일에 시간을 쓸 거라면 말짱 ‘꽝’이란 소리다. 단계란 게 있어서 그렇단다. 부를 쌓는 첫 단계에선 ‘열심히’가 추진력을 얻지만 점차 전략·비전·리더십 단계로 접어들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단 주장이다. 대신 신뢰를 관리하고 네트워크를 관리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투자·소비에 대한 ‘불변의 진리’까지 마다한 건 아니다. 흥분하면 망친다, 재정문제가 걱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손실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되레 수백만달러를 날린다 등등. 백만장자에게도 보편적 철칙은 있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부의 가치는 ‘나눌 때’ 배가된다는 확신이다. 이른바 ‘부자가 지불하는 가난비용’이란 건데. 존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등을 끌어오고 하다못해 미국 금융사기꾼인 찰스 키팅이 테레사 수녀의 주요 기부자였던 점을 상기시킨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나누란 얘기다.
2017년 기준으로 세계에 3500만명쯤 된다는 백만장자의 공통점도 꼽았다. 자신의 비전을, 잠재적 형태의 비금전적 부를 현금화할 줄 안다는 거다. 그러곤 무서운 한마디를 던진다. “정확히 당신의 가치만큼 벌게 돼 있다”고. 관건은 돈줄이 아닌 자신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결국 ‘생각이 비딱하면 들어오던 돈도 되돌아나간다’는 철학인데. 어떤가. 젊은 백만장자가 일러준 대로 생각 한번 바꿔 봐도 손해 볼 건 없을 듯한데. 어차피 돈 드는 일도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