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친 진실, 카메라는 알고 있다[이수연의 아트버스]<8>

오현주 기자I 2022.06.10 00:01:01

▲지가 베르토프의 '기계적 시각'
1922년 소련 탄생 더불어 새시대 담는 새시선 꿈꿔
인간눈이 못본 정직한 세계, 기계눈으로 재창조하려
몽타주기법으로 만든 다큐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
기존영상 파편 재조합, 혁명 통한 러시아 격변 담아

지가 베르토프가 1929년 제작한 다큐멘터리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 등장하는 장면들. 도시를 응시하는 카메라와 교차편집된 눈(가운데)으로 건물 위에서 도시의 일상을 내려다보고(오른쪽 위), 출·퇴근하는 인파를 지켜보고(오른쪽 아래), 그 사이와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왼쪽 위)한다. 단순한 공장노동을 역동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도 했다(왼쪽 아래). 영화는 미하일 카우프만(베르토프의 동생)이란 카메라맨을 통해 대신 들여다본, 도시의 활기찬 일상,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법, 기계의 눈으로 들여다본 풍경 등을 담아냈다. 영화제작, 광산, 철강, 통신, 우편, 건설, 수력발전, 섬유산업 등 이질적인 소재를 매끄럽게 엮기 위해 라임, 평행편집, 다중노출, 동작속도의 변형, 카메라무빙 등의 기법을 활용했다. ‘키노-아이’(영화-눈)라는 베르토프의 영화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꼽힌다.


까마득히 오래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린 동굴벽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술의 기원’이란 것을 말입니다. 문자를 대신한 소통이 예술의 목적, 그 전부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예술은, 또 미술은 다른 날개를 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를 달고, 휴머니즘을 달고, 상상력을 달았습니다. 20세기쯤 오자 미래를 내다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딛고 서서 인간의 꿈이 도달할 그 너머를 꿈꿨던 겁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습니다. NFT에다가 메타버스에까지 닿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시간 현대미술의 진격을 지켜봐온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했던, 예술의 창조적인 경계의 확장을 가져온 미술거장의 삶과 작품 읽기를 통해 예술로 꾸는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그 드넓은 ‘아트버스’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기아나우주센터에서 발사됐다. 1990년부터 가동한 허블망원경을 대신해 적외선 관측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이 망원경은 지구와 태양 양쪽 천체의 중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라그랑주 포인트 근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발사 3개월여 만에 시운전을 통해 허블망원경이 지금까지 발견한 항성 중 가장 먼 항성을 발견하고, 선명한 해상도의 대마젤란은하를 촬영해 보내왔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하는 일 주요 업무 중에는 ‘최초의 별과 은하 관측’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한들 도구에 불과한 망원경이 대체 어떻게 시간을 거슬러 우주 최초의 별까지 감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제임스 웹 망원경이 감지할 수 있는 파장이 적외선이라는 데에 있다. 별에서 나오는 빛은 우주가 팽창하며 파장이 길어지고,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은 적외선으로 바뀌게 된다. 적색편이라고 불리는 이 적외선은 초기 별이 생성한 시절의 정보를 담고 별을 떠나 팽창하는 우주를 향해 끝도 없이 뻗어나간다. 그렇게 희미한 적외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초기 우주의 별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은 적외선을 통해 가시광선을 인식하는 인간의 눈이 감지하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을 더듬었던 것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나오기 100여년 전, 이미 이러한 기계의 눈이 가진 가능성을 동경하던 러시아 영화감독이 있었다. 인간의 눈으로 접근할 수 없는 세계의 진실한 이미지를 담아내는 기계의 눈. 이것이 전설적인 실험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척자인 지가 베르토프(1896∼1954)가 ‘키노-아이’를 통해 사실적인 세계에 다가가려고 했던 방법이다. ‘키노-아이’는 192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상황을 반영한 발명품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2월혁명, 10월혁명과 내전을 거쳐 1922년 소비에트연방이 탄생했지만, 오랜 내전과 혼란으로 제작·배급·유통이란 영화산업의 기본구조는 망가진 지 오래였다.

영화, 새 시대 이상 담는 매체로 각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새롭게 탄생한 소비에트연방의 이상을 담을 수 있는 혁신의 매체로 각광 받았다. 베르토프 등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초창기 다큐멘터리의 한 형식인 뉴스릴(newsreel)을 이용해 새로운 예술을 향한 길을 열고자 했다. 뉴스릴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당대 주요한 사건들을 묘사·설명·재현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과 보급이 쉽고 빠른 장점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베르토프는 기존 영상의 짧은 파편들을 편집하고 새롭게 재조합한 위에 몽타주를 섞어붙여, 카메라의 눈이 바라보는 진실되고 정직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필름의 몽타주기법은 세계를 단편적으로 촬영한 필름의 여러 부분을 오리고 붙여 미처 보지 못한 사건의 단면을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지가 베르토프의 다큐멘터리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에 등장하는 장면들. 일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오리고 붙이고 오버랩해 새롭게 연출해냈다. 베르토프는 이런 기법으로,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의 순간을 발견하거나 전통적 서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베르토프의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는 혁명을 통해 새롭게 깨어나는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을 몽타주기법으로 담은 영화다. 낡은 예술의 형식을 부수기 위해 영화는 진부한 줄거리 전개를 피하고 다양한 현실의 사실적인 모습만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장치는 영화의 특징이 돼 여러 장면에서 발견된다. 우선 베르토프의 영화는 시작부터 환상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초반부부터 카메라 위에 서 있는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 극장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그 영상의 시작을 감상하는 관객, 영화를 준비하고 기계를 점검하는 영사기사와 또 영사기와 같은 기계 등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영화를 만들어내고 상영하고 소비하는 현실을 펼쳐놓으며 시작점부터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미지일 뿐이며, 할리우드영화처럼 주인공에 몰입해 현실을 떠나 달나라로 갈 수 없다!’

기승전결의 서사 아닌 메이킹 과정으로 완성

몰입과 환상 대신 이 영화가 제공하는 것은 스쳐 지나가며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상의 장면들이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사람의 눈높이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각도의 이미지들을 등장시킨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굴뚝의 풍경, 새의 시점에서 바라본 듯한 가로수의 모습, 아스팔트 바닥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다리가 움직이는 모습,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보는 도시의 정경 등을 눈과 교차편집해 카메라가 새로운 눈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잠자는 풍경을 반복해 눈으로 봤어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사라진 진실을 무의식으로 연결시키고, 사람들의 옆모습이나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모습 등 다양하게 삽입한 클로즈업 샷은 우리가 매일 보지만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의 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속도와 움직임이다. 자동으로 접히는 의자, 영화관의 기계들, 전철과 기차 등 운송수단, 공장의 도구와 노동자들 등, 마치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는 듯한 흐름을 끊임없이 영화에 등장시킨다. 이러한 속도와 움직임,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러시아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특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변에서 수영하고, 운동기구를 돌리고, 체스를 두고, 피아노를 치는 모습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근대 도시의 역동적인 노동과 레저의 장면을 함께 어울린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도시를 따라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 또한 여러 운송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걷는 건 물론, 마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도시의 곳곳을 담아내는데,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대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가 여느 영화처럼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메이킹의 과정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스텐베르그 형제가 1929년 만든 ‘카메라를 든 사나이’ 포스터. 오프셋 리소그라피로 제작했다.


필름 오리고 붙여 사건 이면의 진실 포착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란 말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의 눈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똑같은 안경을 보더라도 그 사람을 좋아하면 안경이 멋져 보이고, 그 사람을 싫어하면 안경은 촌스럽고 유행에 뒤떨어진 스타일이 된다. 또 우리의 뇌는 어떤 물건을 보는 즉시 스스로 기억을 소환해 끝도 없는 연상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행에서 사온 수버니어는 그저 기념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의 풍경과 당시의 감정, 누군가와 주고받았던 메시지까지 한꺼번에 소환한다. 이러한 기억은 아름답지만 때때로 사실보다 더 진실스러워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베르토프는 카메라란 신문물을 통해 인간의 눈과 뇌가 가진 약점을 보완하고 기계의 눈을 빌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꿈꿨다. 그의 꿈은 레닌과 트로츠키가 죽고 스탈린이 집권하고 러시아혁명정신이 쇠퇴하며 결국 빛이 바랬지만, 그 꿈이 그대로 멈춘 것은 아니다. 멀지 않아 빅뱅 후 1억∼2억년 사이에 태어난 최초의 별들까지 관측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으는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나사에 따르면 그 제임스 웹 망원경이 오는 7월 12일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정식촬영을 처음으로 시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관측 대상은 비밀이라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인간의 눈이 미처 바라보지 못한 우주의 진실을 탐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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